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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자료명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저자 종부시(宗簿寺) 편(編)
자료명(이칭) 璿源系譜紀略 저자(이칭) 宗簿寺(朝鮮) 編
청구기호 K2-970 MF번호 MF35-4796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璿源譜/系譜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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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00(숙종 26년)
· 청구기호 K2-970
· 마이크로필름 MF35-479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종부시(宗簿寺)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6.2 X 24.3
· 판본 목판본(木板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3권(卷)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9×17.8cm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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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00년(숙종 26) 종부시에서 간행한 왕실 보첩이다.
서지사항
본 보첩은 3권 2책 중 제2책(권3, 발문)만 있는 결본이다. K2-971의 1700년본 제1책을 합쳐야 완질이 된다.
체제 및 내용
본 보첩의 체제는 凡例, 璿源先系, 列聖繼序之圖, 璿源世系, 譜圖, 跋文으로 되어 있으나, 본 보첩은 권3 보도와 발문만 있다. 1700년에 간행된 『璿源系譜記略』은 기존 2권 1책이었던 것을 3권 2책으로 증보한 것이다.
1700년 1월, 종친인 東善都正 李炳益寧守 李梯는 『璿源系譜記略續』을 올렸다. 그들이 이 보첩을 편찬한 이유는 1681년(숙종 7) 『璿源系譜記略』이 간행된 이후 단종의 복위, 인종 비인 莊烈王后현종 비인 明聖王后의 휘호를 올린 것, 왕세자 탄생·책봉 등 국가의 大事가 기록되지 않았으며, 선조의 자손들 가운데 기록되지 못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璿源系譜記略續』의 교정을 맡았던 종친 東平君 李杭·晉平君 李澤·林原君 李杓는 이 보첩이 너무 간략하고 잘못된 곳이 많으며, 기존의 『璿源系譜記略』에도 간행 이후에 있었던 단종 복위 등 국가 대사가 누락되어 있으니 두 책을 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어 윤허를 얻었다. 숙종종부시에 명하여 이 보첩을 교정·증보하여 간행하라고 하였다.
기존 『璿源系譜記略』의 열성 어첩에 누락된 부분과 자손록을 증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증보된 내용이 많아 한 책을 두 책으로 분책하고 吳道一의 발문을 추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범례는 1681년 간행된 『璿源系譜記略』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때 증보 부분은 태조·정종·태종·단종·인조·현종·숙종의 어첩이다. 태조·정종·태종의 어첩은 국왕에게 존호를 추상한 사실, 단종어첩은 ‘단종’이라는 왕호 추복과 시호 ‘純定安莊景順’, 능호 ‘莊陵’, 단종 비는 ‘定順’이라는 시호, ‘端良齊敬’이라는 휘호, ‘思陵’이라는 능호를 추상한 사실을 기재하였다. 인조·현종의 어첩은 인조비 장렬왕후에게 올린 존호 ‘康仁’, 시호 ‘莊烈’, 휘호 ‘貞肅溫惠’, 능호 ‘徽陵’ 그리고 현종비 명성왕후의 시호 ‘明聖’ 휘호 ‘貞獻文德’, 능호 ‘徽陵’ 등을 기재하였다. 숙종의 어첩은 자손록에 관한 것으로 왕세자와 왕자군들에 대하여 첨록하였다. 수정 증보된 1700년(숙종 26) 8월에 어람용 30건, 세자궁 20건, 반사용 242건, 총 292건의 『璿源系譜記略』을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璿源系譜記略』(K2-967, K2-971) 장서각 소장.
肅宗實錄』 26년 4월 16일(기묘) ; 26년 8월 4일(갑자). URL

집필자

원창애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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