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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유신호학사실적(皇朝遺臣胡學士實蹟)

자료명 황조유신호학사실적(皇朝遺臣胡學士實蹟) 저자 김종수(金鍾秀)
자료명(이칭) 皇朝遺臣胡學士實蹟 저자(이칭) 金鍾秀(朝鮮) 撰
청구기호 K2-874 MF번호 MF35-8124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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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76(고종 13년)
· 청구기호 K2-874
· 마이크로필름 MF35-8124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김종수(金鍾秀)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19.9 X 13.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 藏書閣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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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명나라 학사 출신인 胡克己와 관련된 사적을 정리한 책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표지는 洋紙를 여러 겹 붙여 만들었다. 繼線 및 匡郭이 없는 楮紙에 필사하였다. 뒤표지 이면의 “西紀 1876(고종 13) 丙子頃 馮世鎬抄, 馮榮燮寄贈”이라는 기록을 통해 1876년 明末 遺民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는 馮榮燮(1920~)이 기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호극기는 자가 禮復으로, 명나라 말기에 한림학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1643년(인조 21)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명나라가 멸망하자 경기도 가평에 정착하여 살다가 뒤에 함경도 북청 덕성면에서 여생을 마쳤다. 호극기는 이후 巴陵胡氏의 시조가 되었다.
北靑邑誌에서 관련 내용을 옮기면서 1785년(정조 9) 호극기의 후손 胡斗弼이 駕前에서 상언하자 친히 호극기의 이름을 써서 청주 화양동서원에 내려준 것을 명시하였다. 이어 호극기의 시문을 수록하였으며, 趙鐘永이 찬술한 「學士公畵像讚」과 「冠山書院日記」 등을 수록하였다. 계속해서 효종의 어찰, 숭정황제의 어필, 춘추향사를 거행할 때에 예를 다하라는 영조의 지시를 수록한 예조의 관문인 禮曹行關, 1795년(정조 19) 김종수(1728~1810)가 찬술한 「御筆閣記」와 정조가 찬한 제문 등이 수록되었다.
특성 및 가치
본 도서는 조선 후기 中華思想의 모습을 해명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정조 대에는 특히 명나라 후손들에 대한 調用이 여러 차례 이루어졌는데, 본 도서에 수록된 호극기에 대한 각종 현창 사업 역시 이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 후기 중국 유민과 鶴隱 馮榮燮(1920~) 선생」, 신용철, 『동양사학연구』 5집, 동양학연구학회, 1999.

집필자

이근호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