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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선생언행록(寒岡先生言行錄)

자료명 한강선생언행록(寒岡先生言行錄) 저자 장현광(張顯光)
자료명(이칭) 寒岡先生言行錄 저자(이칭) 張顯光(朝鮮) 等撰
청구기호 K2-867 MF번호 MF35-1235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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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간년미상(刊年未詳)
· 청구기호 K2-867
· 마이크로필름 MF35-1235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장현광(張顯光) 등(等)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2.6 X 22.3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4권(卷)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19.2×16.2cm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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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張顯光(1554~1637)이 寒岡 鄭逑(1543~1620)의 언행을 수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寒岡言行錄’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乾·坤’으로 기재되어 있다. 書腦 하단에 ‘共二’라는 기록이 있다. 서·발문 및 刊記가 없어 정확한 간행 연대를 알 수 없으나, 판각 상태 및 紙質로 보아 조선 후기 후쇄본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鄭逑는 字가 道可, 號는 寒岡, 本貫은 淸州이며, 思中의 아들이자 寒暄堂 金宏弼의 외증손이다. 그는 吳健에게 修學하였으나 후에 南冥 曺植, 退溪 李滉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1573년(선조 6) 遺逸로 薦擧되어 1578년 司圃署 主簿, 그 후 三嘉·義興·知禮 등의 縣監에 임명되었으나 就任하지 않고, 1580년(선조 13)에 비로소 昌寧縣監에 부임하여 善政을 베풀어 生祠堂이 세워졌다. 1608년(광해 즉위년) 大司憲이 되었으나 臨海君의 獄事가 일어나자 이에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용서하라고 上疏한 뒤 고향에 돌아갔다. 1613년(광해 5) 癸丑獄事가 일어나자 上疏하여 永昌大君을 구하려 했고 鄕里에 百梅園을 세워 儒生들을 가르쳤다. 經學을 비롯하여 算數, 兵陣, 醫藥, 風水에 이르기까지 精通했으며 특히 禮學에 뛰어나 예학에 관한 저술이 많다. 당대의 名文章家로서 글씨도 잘 썼으며 많은 제자도 배출했다.
본서는 門人들과 子孫들이 衷集하여 純祖朝에 刊印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과 序次를 살펴보면 卷頭에는 目錄과 張顯光, 許穆 등 18명의 名單과 本貫 등이 기록된 箚記諸子目錄이 실려 있다. 주 내용은 學問, 讀書, 持敬, 資品, 律身, 成德, 禮學, 講辨, 敎人, 起居語默之節 등에 대한 寒岡의 言行을 기술하였고, 條目별로는 朴明胤, 李厚慶, 裴尙龍, 李天封, 李潤雨, 孫處訥, 李堉, 黃宗海, 文緯, 장현광, 허목 등이 寒岡에 관하여 쓴 글을 節錄하여 類別로 실었다. 그리고 尊賢, 事親, 友愛, 居喪, 奉先, 居家, 飮食衣服之節, 交際, 威儀, 處鄕, 辭受, 出處, 忠義, 居官, 著述, 論時事, 處小人, 雜記, 考終記 등 정구의 언행을 기술하였다. 그리고 부록으로 정구에 대한 문인들의 實記 및 遺事가 실려 있고, 한강에 대한 추증 및 사액이나 문묘 종사를 청원하는 글 등이 실려 있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性理學과 禮學에 조예가 깊은 정구의 생애 및 문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당시의 정치적, 학문적 동향을 알 수 있다.

집필자

최순권
범례
  • 인명
  • 관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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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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