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선생실기(逋翁先生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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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정보 해제 xml
일반사항
· 사부분류 | 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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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시기 | 1912 |
· 청구기호 | K2-864 |
· 마이크로필름 | MF35-1871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설명 | 생몰년 | 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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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현(鄭益鉉) 편(編) |
형태사항
· 크기(cm) | 31.6 X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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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 |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전사자다혼목활자(全史字多混木活字)) |
· 장정 | 선장(線裝) |
· 수량 | 2권(卷) 1책(冊) |
· 판식 | 반곽(半郭) 22.5×15.5cm |
· 인장 |
李王家圖書之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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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정보
내용
정의
1453년(단종 1) 癸酉靖難으로 賜死된 右議政 鄭末의 아들인 鄭之産(1423~1469)의 遺文 약간과 遺事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서지사항
表紙書名, 版心題, 書根題는 모두 ‘逋翁實記’이다. 앞표지 우측 상단에 編目이 기재되어 있다. 卷末 板權紙의 기록을 통해 본서가 1912년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체제 및 내용
鄭之産의 字가 彦平, 號가 逋翁·逋臣, 본관이 晋州로, 養父는 鄭苯이고, 生父는 洪州牧使 鄭孝安이다. 1445년(세종 27) 司馬試에 합격했으며 1445년 戶曹正郞에 이르렀으나 1453년 계유정난으로 鄭末이 後孫을 두지 못한 채 賜死되자 양자로 들어간 후 벼슬을 버리고 公州로 내려가 逋臣이라 自號하고 여생을 조용하게 마쳤다. 특히 孝誠이 지극해 칭송을 받았다.卷首에 閔丙奭·閔泳煥이 1905년에 쓴 序文과 金福漢의 1910년에 쓴 序文 및 目錄이 있다. 권1에는 정지산의 遺文(詩 3首, 詞 1편, 記 1편)과 行蹟, 그리고 東鶴寺에 招魂閣을 지어 단종을 모신 事蹟 및 莊陵 配食壇에 모셔진 아버지 정분에 관한 사실 등으로 모아 놓았다. 권2에는 公州 儒生들이 정지산의 증직 및 충신 효자 정려를 위해 돌린 통문, 충청남도, 中樞院 政府, 禮院, 禮式院, 宮內府에 보고한 문서 등을 모아 놓았다. 그리고 卷末에 後孫 載性과 益鉉이 1905년에 쓴 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계유정난으로 賜死된 右議政 정분의 장릉 배식단 및 공주 동학사의 배향 과정 및 이를 위한 아들의 노력, 그리고 정지산을 증직과 충신 효자 정려를 위한 일련의 문서와 그 과정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참고문헌
집필자
최순권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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