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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돈녕이공시장(判敦寧李公諡狀)

자료명 판돈녕이공시장(判敦寧李公諡狀) 저자 김학진(조선)(金鶴鎭(朝鮮)) 찬(撰)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860 MF번호 MF35-1955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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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9](융희 3년)
· 청구기호 K2-860
· 마이크로필름 MF35-1955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김학진(金鶴鎭)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6.5 X 26.6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4.9×20.8cm
· 인장 藏書閣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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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말기 문신으로 세관 전문가였던 敬窩 李(0020)永(1837~1908)의 시장이다.
체제 및 내용
찬자는 金尙憲의 11대손이며 일본으로부터 男爵의 작위를 받은 바 있는 金鶴鎭(1838~1917)이다. 이헌영의 아들 李秀一이 부친의 평생의 행적과 이력을 정리한 후 김학진에게 부탁하여 찬술한 것이다. 찬술 시기는 이헌영1908년 12월 2일에 사망하였고, 文貞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므로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전인 1909년경으로 추정된다.
이헌영선조의 13남 寧城君의 후손이며 자는 景度, 호는 敬窩, 東蓮이다. 1867년(고종 4) 진사, 1870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81년 1월 紳士遊覽團의 한 사람으로 발탁되어 李弼永, 閔建鎬, 林基弘 등이 통사로 동행하였다. 이때 그가 시찰한 부서는 세관 관련 기구였는데, 이는 개화파 관료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귀국한 뒤 統理機務衙門이 신설되자 副經理事로 通商司堂上에 임명되었다. 임오군란 직후인 1882년 8월에는 승정원 우부승지가 되었고, 1883년에는 경상우도 암행어사를 거쳐 監理釜山港通商事務에 임명되었다. 1884년 의주부윤, 1886년 參議內務府事로 日本駐箚辦事大臣이 되어 일본에 다녀왔다. 1890년 이조참판·協辦交涉通商事務,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편찬서로는 『日本聞見錄』, 『日本聞見別單草』, 『日本稅關視察記』, 『朝鮮國輸出入半年表』, 『長崎稅關規式抄』 등이 있다.
특성 및 가치
이헌영의 생애와 행적에 대한 기본적인 전기 자료이다. 특히 그가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의 세관을 시찰한 경험을 기반으로 세관전문가로 활동했던 행적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紳士遊覽團考」, 정옥자, 『歷史學報』 27, 역사학회, 1965.

집필자

이동인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