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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선생연보(濯纓先生年譜)

자료명 탁영선생연보(濯纓先生年譜) 저자 김대유(金大有)
자료명(이칭) 濯纓先生年譜 저자(이칭) 金大有(朝鮮) 編
청구기호 K2-853 MF번호 MF35-1084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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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74(고종 11년)
· 청구기호 K2-853
· 마이크로필름 MF35-1084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김대유(金大有)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9.8 X 20.3
· 판본 목활자본(木活字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0×16.0cm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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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무오사화로 죽은 조선 전기 문신 濯纓 金馹孫(1464~1498)의 연보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과 書根題는 ‘濯纓先生年譜’이다. 版心題는 版上口에 ‘濯纓先生’이, 魚尾 아래 ‘年譜’가 인쇄되어 있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上·下’로 기재되어 있다. 書腦 하단에 ‘共二’라는 기록이 있다. 卷末에 실린 跋의 기록을 통해 본서가 1874년(고종 11)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김일손의 연보는 1548년(명종 3) 조카 三足堂 金大有(1479~ 1551)가 손수 자료를 모아 편집한 것으로, 김일손의 일기를 기본으로 하고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나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그 뒤 300여 년 만인 1874년 4월 서울에서 春川의 宗人 金晋炯김대유의 초본을 기초로 洪淳穆(1816~1884)의 서문을 받아 간행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12대손 昌潤이 여러 학자들에게 발문을 받아 淸道紫溪書院에서 중간하였다. 연보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874년(고종 11) 홍순목의 서문이 있다. 상권은 1464년(세조 7) 경상도 淸道郡 上北面 雲溪里에서 출생한 기사부터 1494년(성종 25) 31세에 성종에게 『大學衍義』를 진강한 기사까지 수록하였다. 하권은 32세인 1495년(연산 1) 2월 사직하려 하였으나 승낙받지 못했다는 기사부터 1874년 11월 청도의 사림들이 紫溪書院에 모여 연보를 중간했다는 기사까지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 발문 3종이 있는데 먼저 1874년 여름 李龍雨, 李在喜, 6월 창윤의 발문 등이 그것이다.
특성 및 가치
김일손의 생애를 이해는 데 기초적인 전기 자료이다. 장서각에는 본서 이외에 『濯纓先生年譜』(B9I 113A, B9I 113B)가 소장되어 있어서 참고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1874년 4월 김진형서울에서 초간하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창윤이 같은 해 11월에 청도에서 중간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으로 보아 연보 간행과 관련된 조선 후기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도 참고할 수 있다.

집필자

이동인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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