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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추공실기(僉樞公實記)

자료명 첨추공실기(僉樞公實記) 저자 김종현(金琮鉉)
자료명(이칭) 僉樞公實記 저자(이칭) 金琮鉉等撰
청구기호 K2-834 MF번호 MF35-2181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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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26
· 청구기호 K2-834
· 마이크로필름 MF35-2181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김종현(金琮鉉) 등(等)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2.5 X 21.3
· 판본 목활자본(木活字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6권(卷)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0.8×15.8cm
· 인장 春園, 宋福憲印,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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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중기의 인물로 관직 생활과 의병 활동을 했던 金殷輝(1541~ 1611)의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편찬한 실기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版心題, 書根題는 모두 ‘僉樞公實記’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 冊次가 ‘單’으로 기재되어 있다. 卷末에 실린 姜敎錫이 쓴 跋을 통하여 본서가 1926년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김은휘가 만년에 수직으로 받은 관직이 첨지중추부사이기 때문에 ‘첨추공실기’라 하였다. 후손 整鉉, 琮鉉, 容基 등이 그의 유문을 모아 엮었으며, 序는 宋洛彬이 작성하고, 跋文은 外11世孫 강교석과 10대손 金琮鉉이 썼으며, 병인년(1926) 봄에 간행되었다.
6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僉樞公實紀序, 凡例, 目錄에 이어 제1권은 年譜略, 제2권의 事實은 김장생이 찬한 行狀, 장유가 찬한 墓碣銘, 5대손 鎭一이 찬한 墓誌, 제3권은 읍지, 장계, 문집, 가장, 국조인물지 등에서 김은휘와 관련된 사실을 발췌한 事實雜錄, 제4권은 雜著(與客問答), 제5권은 김은휘가 識한 金宗胤의 墓表, 庚戌年의 封事, 17편의 詩를 모은 遺文, 제6권은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는 것을 모아 수록한 誄語(挽詞, 祭文)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은휘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光山, 자는 景晦이다. 大司憲을 지낸 金繼輝의 아우이다. 蔭仕로 나아가 내직은 活人署別提, 司圃署別提, 水運判官, 通禮院引儀, 司憲府監察, 宗簿寺主簿, 戶曹佐郞, 工曹佐郞, 翊衛司翊衛, 刑曹正郞, 戶曹正郞, 宗親府典籍, 通禮院相禮를 역임하고, 외직은 交河縣監, 臨陂縣令, 淸道·中和·丹陽·溫陽·淸風·加平·天安 등 7개 지역 군수廣州牧使를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해 체찰사 鄭澈종사관으로 종군하였다. 이듬해 관병과 의병의 연합군을 이끌고 오산禿城山城을 지키다가 정철이 무고를 당하자 낙향하였다. 그 뒤 조정에서 號牌法을 시행하려 하자 그 불편한 점을 상소하였고, 鄭汝立을 여러 차례 규탄하였다. 만년에 壽職을 받아 嘉善大夫로 승진되어 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가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특성 및 가치
조선 중기의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한 인물의 생애와 관직 활동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자료이다.

집필자

임선빈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