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헌대부지돈녕사사심공시장(資憲大夫知敦寧司事沈公諡狀)
· 원문이미지
· PDF서비스
· 기본정보 해제 xml
일반사항
· 사부분류 | 사부 |
---|---|
· 작성시기 | 1908(융희 2년) |
· 청구기호 | K2-811 |
· 마이크로필름 | MF35-1955 |
· 기록시기 | 1908~1910年(隆熙 2~4)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설명 | 생몰년 | 신분 |
---|---|---|---|---|
남정철(南廷哲) 찬(撰) |
형태사항
· 크기(cm) | 40.0 X 28.0 |
---|---|
· 판본 | 필사본(筆寫本) |
· 장정 | 선장(線裝) |
· 수량 | 1책(冊) |
· 판식 | 반곽(半郭) 25.8×18.8cm |
· 인장 |
藏書閣印
|
· 상세정보
내용
정의
조선 말기의 문신 沈健澤(1848~1908)의 諡號를 청하기 위해 南廷哲(1840~1916)이 작성한 諡狀이다.서지사항
表紙書名은 ‘沈公健澤諡狀’이다. 구 표지가 남아 있는데 서명은 개장된 표지의 서명과 같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藏書閣印’이 날인되어 있다. 본문은 필사 인찰공책지에 淨書하였고, 전체적으로 충해의 흔적이 있다.체제 및 내용
심건택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이 靑松, 자는 景皐이다. 증조부는 奎章閣直提學을 지낸 念祖이고, 조부는 應奎이다. 부친은 正誼이며, 모친은 驪興閔氏 致儆의 따님이다. 생부는 宜植, 생모는 南陽洪氏 鍾文의 따님이다. 1887년(고종 24) 蔭職으로 初仕하여 義禁府都事가 되었고, 이후 내·외직을 역임하여 1907년(융희 1) 知敦寧司事에 이르렀으나, 이듬해 10월 18일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은 安東金氏 準淳의 딸이며, 淸陰 金尙憲의 후손이다. 슬하에 5남 2녀를 두었다.이 諡狀은 심건택의 차남 相翊이 남정철(1840~1916)에게 부탁해서 짓게 된 것이다. 남정철은 평소에 심건택과 친분이 있는데다, 禮曹判書와 弘文館學士를 지냈기에 시장을 짓기에 적합하였다고 여겼다. 시장의 내용은 ‘가계 - 평생의 이력 - 配位와 子孫 - 삶의 종합적인 평가’의 평범한 구성으로 짜여 있다. 평생의 이력 중에서는 公州郡守로 있을 때 조정에서 그를 星州로 移任시키자 백성들이 옮기지 말도록 탄원하여 결국 還任되었던 일이 중요하게 서술되어 있다. 평가에 있어서는 심건택의 성품이 忠厚하고 公職에 있으면서 廉雅하게 몸가짐을 가졌음이 강조되었고, 남정철이 평소에 교유하면서 본 심건택의 有德君子로서의 모습이 덧붙어 있다. 심건택에게 시호가 내려졌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특성 및 가치
조선 말의 관리였던 심건택의 생애를 이제까지 밝혀진 것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이다.참고문헌
집필자
이태희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