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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공선시장(尹公銑諡狀)

자료명 윤공선시장(尹公銑諡狀) 저자 신기선(조선)(申箕善(朝鮮))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799 MF번호 MF35-1955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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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2(광무 5년)
· 청구기호 K2-799
· 마이크로필름 MF35-1955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신기선(申箕善)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8.0 X 25.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판식 반곽(半郭) 30.0×21.5cm
· 인장 藏書閣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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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중기 문신 秋潭 尹銑(1559~1639)의 시장이다.
체제 및 내용
찬자는 東道西器論者로 開化黨 인사와 긴밀하게 교유했던 申箕善(1851~1909)이다. 윤선의 문집 『秋潭文集』은 1910년 10대손 彝東과 11대손 炳甲 등이 간행한 것으로 권3에 시장이 수록되어 있다. 신기선1902년 軍部大臣을 역임하였는데, 시장 말미에 자신의 관직을 군부대신으로 표기하였으므로 본 시장의 찬술 시점은 1902년으로 추정된다.
윤선은 본관이 坡平, 자는 , 호는 秋潭이며, 경남 삼가에서 출생하였다.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하고, 158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는 1611년(광해 3) 8월에 승지로 임명되었는데, 주석에 나오는 그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면, “윤선은 거칠고 비루하여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은 사람인데, 정인홍의 門徒인 까닭에 청요직에 발탁, 제수되었다.”라고 하였다. 정인홍과의 관계를 빌미로 비판적인 평가를 받는 데에는 그가 경상남도 삼가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러한 평가는 치우친 것으로 보인다. 1592년 고향에서 임진왜란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의주로 떠나는 선조를 호종하였는데, 선조가 그 충절을 가상히 여겨 사헌부장령에 임명하고, 특별히 명하여 세자를 수행하게 하고 廟主를 봉행하게 하였던 사실이 있다. 1613년(광해 5) 계축옥사로 仁穆大妃서궁에 유폐되자 위졸을 시켜 쌀과 고기를 넣어 드리게 하였는데, 供饋를 하지 않으면 萬世에 불효의 이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광해군을 설득하여, 공궤를 끊지 않게 하였던 일화가 있다. 이 두 가지 일화로 보면 그는 매우 강직하고 충절이 있는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1623년 인조가 즉위하여 다시 우참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산수를 즐기며 여생을 마쳤던 처세관은 깊은 여운을 준다.
특성 및 가치
추담 윤선의 생애와 행적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이다.

참고문헌

申箕善의 東道西器論硏究」, 權五榮, 『淸溪史學』1, 청계사학회, 1984. URL

집필자

이동인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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