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릉지장(寧陵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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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 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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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시기 | 1794(정조 18년) |
· 청구기호 | K2-666 |
· 마이크로필름 | MF35-1616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설명 | 생몰년 | 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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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석(李景奭) 등(等) 찬(撰) |
형태사항
· 크기(cm) | 32.2 X 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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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 | 필사본(筆寫本) |
· 장정 | 선장(線裝) |
· 수량 | 1책(冊) |
· 판식 | 반곽(半郭) 24.1×17.6cm |
· 인장 |
藏書閣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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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정보
내용
정의
효종의 일생과 업적 등을 기록한 책이다.서지사항
表紙書名은 ‘寧陵誌’이다. 구 표지가 남아 있는데, 개장된 표지의 표지 서명과 같다. 본문은 필사 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는데, 전체적으로 하단이 약간 결락되어 배접한 상태이다. 장서각에 동일 서명의 K2-667이 소장되어 있다.체제 및 내용
현종이 즉위년(1659)에 부왕인 孝宗(재위 1649~1659)의 일생을 친필로 기록한 행록, 효종의 일생을 기록한 이경석(1595~1671)의 행장, 효종이 질병으로 인해 죽은 것을 애도하며 그 덕업을 찬양한 송시열(1607~1689)의 영릉지문 등 효종의 일생을 다룬 기록이 주를 이룬다. 이외에도 이경석이 찬한 王世子敎命文, 李植(1584~1647)이 쓴 죽책문, 趙絅(1586~1669)이 쓴 시책문, 李一想(1612~1666)이 쓴 애책문, 朴泰遜(1641~1692)이 쓴 定世室告廟祝文, 吳瑗(1700~1740)이 1740년(영조 16)에 찬한 追上尊號玉冊文, 표석음기, 金壽恒(1629~1689)이 1674년(현종 15)에 찬한 지문, 金光煜(1580~1656)이 1645년(인조 23)에 찬술한 왕세자빈 仁宣王后의 敎名文, 김기국이 쓴 죽책문, 조석윤이 쓴 王妃敎名文, 윤순지가 쓴 옥책문, 呂爾徵(1588~1656)이 찬한 樂章, 이일상이 찬한 王大妃上尊號玉冊文, 兪棨(1607~1664)가 쓴 악장, 강백년이 1674년에 쓴 시책문, 金萬基(1633~1687)가 쓴 애책문으로 구성되어 있다.현종이 찬한 행록은 仁祖(재위 1623~1649)의 잠저 시절 효종이 향교동에서 태어났고 병자호란 후 심양으로 끌려가서도 의연하게 처신하며 오랑캐에 대한 복수 의지를 잊지 않은 행실과 왕세자에 오르고 즉위한 과정 등을 간략히 적었다.
이경석은 행장에서 효종이 8세에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13세에 張維(1587~1638)의 딸과 가례를 치른 사실, 병자호란 후 1637년 昭顯世子(1612~1645)와 함께 심양으로 끌려간 일 등을 기술하였다. 1645년 소현세자가 병으로 졸하자 세자에 책봉되고 1649년 인조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인조에게 그 피를 먹인 효성을 보인 일 등도 차례대로 기술했다.
그 뒤에는 인조가 승하하고 왕위에 즉위한 후의 업적도 차례대로 기술하였다. 종친인 인평대군과 숭선군의 역모를 알고도 관대하게 대처한 일, 소현세자의 자녀를 복작시킨 일 등을 기술하면서 효종의 온후한 친친의 정을 강조하였다. 또 『書經』과 『大學衍義』, 『心經』 공부에 성실히 임한 일과 송준길과 송시열, 김집 등을 등용한 일을 서술하였다. 이 외에도 김육의 의견을 받아들여 호서 지방에 대동법을 시행한 일, 노비추쇄 정책을 벌인 일 등을 기술한 후 병에 걸려 1659년 훙서하기까지의 기록을 빠짐없이 서술하였다.
집필자
신병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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