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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사제집주(東明事題集註)

자료명 동명사제집주(東明事題集註) 저자 김재소(金在韶), 한치유(韓致愈), 홍재조(洪在朝)
자료명(이칭) 東明事題集註 저자(이칭) 金在韶 葺註;
청구기호 K2-661 MF번호 MF35-189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王·王后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전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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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92(고종 29년)
· 청구기호 K2-661
· 마이크로필름 MF35-189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김재소(金在韶) 즙주(葺註)

형태사항

· 크기(cm) 24.0 X 15.9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15.9×10.8cm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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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金在韶고구려 시조로서의 東明聖王의 탄생과 건국, 업적의 신이한 사적을 영사시로 읊고, 『국사』와 『가승』에서 관련된 내용을 뽑아 주석으로 편성한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版心題는 모두 ‘東明事題’이다. 표지는 갈색이며, 四針眼으로 線裝되었다. 표지 제첨은 테두리와 서명이 목판으로 인쇄되었다. 제2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1891년(고종 28) 7월에 祥原文官이었던 朴鍾善의 청에 의하여 동명왕릉을 개축하게 되었다. 이때 이 일을 감독하였던 斗山 김재소가 『삼국사기』와 『고씨가승』을 보고서 그중 동명왕에 대한 사실을 살펴 칠언율시의 영사시로 엮었다. 시의 아래에는 동명왕에 관련된 기사를 주석으로 달아 그 뜻을 명확히 하고 또 각 시의 말미에는 지명이나 연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간단히 덧붙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拓齋 韓致愈가 교정을 하였으며, 勿菴 洪在朝가 編證을 가하였다. 서문은 毅齋 閔丙奭이 적었으며, 발문은 黃岦이 적었다. 『동명사제』는 동명왕의 탄생의 신이함과 국가를 세워 백성을 편안히 한 업적을 찬양하였다. 또한 『고씨가승』의 편성과 관련이 있는 동명왕 45대손이라는 蒼巖 高基의 「家乘跋論」과 『山論遺書』의 내용을 덧붙여 동명왕릉이 허장이 아님을 주장하였다. 고구려 동명왕의 공업과 백성들을 진무한 공을 찬미하는 데 이 책의 편찬 목적이 있다. 『동명사제』에서 1장은 금와의 탄생, 2장은 해모수유화의 결합, 3장은 동명성왕의 신이한 탄생, 4~10장은 주몽의 특출한 재능과 고구려 건국과정, 11~22장은 동명왕의 치적, 23~31장은 봉릉 사실과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 동명왕의 葬地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개화 초기 외국의 침입에 대해 자국의 영토와 관방 시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으며, 그중 북방 지역에 대한 관심은 옛 고구려동명왕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고종1891년중화에 있던 동명왕 무덤을 동명왕릉으로 능호를 승격시켰으며, 이듬해인 1892년에는 명칭에 걸맞도록 능을 개축하도록 명을 내렸다. 『동명사제』는 이 개축을 담당하였던 김재소동명왕에 관련된 사항을 모아 정리한 책이다. 그 이후에도 동명왕릉에 대해 1917년 중수가 있었으며, 북한에서는 1974년 학술조사와 함께 1994년 시조릉으로 성역화하였다.

집필자

박인호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