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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옥첩기략(皇明玉牒紀略)

자료명 황명옥첩기략(皇明玉牒紀略) 저자 편자미상(編者未詳)
자료명(이칭) 皇明玉牒紀略 저자(이칭) [編者未詳]
청구기호 K2-650 MF번호 MF35-189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叢傳/外國人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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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세기(世紀) 이후(以後)
· 청구기호 K2-650
· 마이크로필름 MF35-1892
· 기록시기 18世紀 以後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편자미상(編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12.2 X 14.8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15.9×11.1cm
· 인장 藏書閣圖書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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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8세기 이후 조선에서 중국 명나라 역대 황제의 계보와 행적 등을 간략하게 기록한 옥첩이다.
체제 및 내용
본 도서의 題簽은 ‘皇明玉牒紀略’이다. 편찬 사항을 파악할 수 있는 序, 跋, 編著者가 없어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수록된 대상이 태조에서 영력제까지 명대의 모든 황제이며, 편찬자의 ‘謹按’에 『통문관지』가 언급된 점으로 보아 18세기 이후 조선에서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서두에 ‘列聖統天繼序圖’가 있는데, 이는 명대 황제의 계서를 도표로 정리한 것으로 太祖 이전의 德祖, 懿祖, 熙祖, 仁祖에서 시작하여 永曆年間(永明王)까지의 계보를 기재하였다. 명대 玉牒, 屬籍, 宗藩慶系錄, 璿源積慶圖, 璿源類譜 등 각종 譜牒을 정리하고 편찬하는 직무는 宗正寺에서 담당하였다. 이 중 옥첩은 황위에 등극한 황제의 재위 기간, 정령, 상벌, 호구, 풍, 흉 등 상서로운 일들을 기재한 것으로, 본 도서는 이러한 옥첩을 간략하게 재정리한 것이다.
본문에는 황제의 정식 칭호와 諱, 建元, 壽, 재위 기간, 자녀의 수, 陵의 명칭을 차례로 기재하고, 다음에는 后, 繼后의 명칭과 성씨, 壽, 자녀의 수, 陵의 명칭을 기재했다. 그다음에는 자, 녀의 명칭을 순서대로 기재하였다. 기재 사항에 이어 추가로 서술되는 내용은 細註 형식으로 해당 사항의 아래에 기술하였다. 張廷獄의 『明史』에 의하면 영력 황제가 4월에 雲南에서 붕어하여 명나라의 계통이 끊어졌다고 한다. 『通文館志』에 기록된 칙서에는 12월 오삼계가 추격하여 영력 황제와 妃嬪을 잡았다고 하고, 1667년(丁未年)에 표류한 한인이 영력 21년의 역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鄭成功의 후손이 대만에서 영력 연호를 계속 사용하였기 때문이라는 편찬자의 의견이 본문의 제일 뒤에 ‘謹按’으로 기재되어 있다. 『통문관지』의 내용을 인용한 점으로 본 도서의 편찬은 18세기 이후 조선에서 편찬된 것으로 짐작된다. 부록으로 魯監王, 靖江王, 紹武王의 인적 사항을 간략히 기재하고, 뒤이어 태조 이전의 4황제(德祖, 懿祖, 熙祖, 仁祖)와 興宗 孝康皇帝睿宗 獻皇帝 등을 기재하였다. 권말에 ‘太廟配享臣’은 태묘에 배향된 배신을 東廡와 西廡로 나누고 기재하였는데, 동무에는 壽春王 등 同姓 王과 그 妃를, 서무에는 中山武寧王 徐達 등 왕이나 제후의 작위를 받은 개국공신을 기재하였다.
특성 및 가치
18세기 조선 후기 사회에서 존주론의 입장으로 명대 황제의 계서도를 비롯해 옥첩을 정리한 책으로 조선의 대명 인식 및 대명의리론에 대한 관심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황위 계승의 정통성을 강조하며 명대사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료이다.

집필자

김경록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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