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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실록구입진서문(皇明實錄購入進書文)

자료명 황명실록구입진서문(皇明實錄購入進書文) 저자 김이교(金履喬), 홍건후(洪健厚)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207 MF번호 MF35-408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外交·通商/中國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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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31(순조 31년)
· 청구기호 K2-5207
· 마이크로필름 MF35-408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김이교(金履喬) 식(識)

형태사항

· 크기(cm) 55.8 X 18.3
· 판본 음각본(陰刻本)
· 장정 목판(木板)
· 수량 1점(點)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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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829년(순조 29) 동지사 柳相祚 일행이 에서 구입해온 『明實錄』 2,825권 461책의 조선 유입 내력을 1831년에 새긴 匣面이다.
서지사항
 木牘의 형태이고 크기는 55.8×18.3cm이다. 裱紙 상단에 ‘皇明實錄/太祖二十二冊/成祖十五冊’, 하단 중간에 ‘第一函’이라고 金泥로 기록하였다. 우측 하단에 사주쌍변의 양지 제첨에 표제 ‘皇明實錄購入進書文’을 인쇄하여 붙여놓았다. 본문은 판식이 없고, 목판 위에 金泥로 음각하였다.
체제 및 내용
 목판으로 만든 갑의 표제는 “皇明實錄/太祖二十二冊/成祖十五冊”이라 새기고 중간에 “第一函”이라 새겼다. 또한 갑면 안쪽에 새긴 기록은 『황명실록』의 조선 유입 내력과 황단의 敬奉閣에 소장하였음을 새겼다. 그 갑면의 내용을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
 
 崇禎紀元後四庚寅春, 使行入燕回購 皇明列朝實錄 二千八百二十五卷 共四百六十一冊, 齎來以進. 書皆寫本紙故, 而蠧字不斷爛, 而標題以皇明實錄, 盖知爲明人舊藏也. 謹攷明史藝文志, 其世次卷數悉相符, 唯藝文志所在喜宗實錄八十四卷, 此則缺焉. 豈此本之寫在天啓年間故歟. 今天下唯我東國獨講尊周之義, 而得此書於崇禎甲申百八十七年之後, 一開展而聲明文物, 若身親見撫卷, 咨嗟倍激風泉之感. 恭承睿旨匣而藏之于關中皇壝之敬奉閣, 謹識匣面如此. 原任內閣提學 臣金履喬奉令謹識, 進士 臣洪健厚奉令謹書.
 숭정 기원 후 네 번째 경인 봄, 사행이 연경에 들어갔다 돌아오면서 『황명열조실록』 2,825권, 총 461책을 구매해 가지고 와서 진상하였다. 책은 모두 사본지이므로 글자는 좀먹었으나 조각으로 잘리지는 않았고, 표제는 ‘황명실록’으로 명나라 사람이 舊藏했음을 알겠다. 『명사』 예문지를 살펴보니 그 世次, 권수가 실로 부합하지만, 예문지에 있는 『희종실록』 84권은 결락되었다. 어찌 이 본의 등사가 천계 연간이기 때문이겠는가? 지금 천하에서 오직 우리 조선만 尊周의 뜻을 읽었으나, 숭정 갑신(1644) 187년 후에 본서를 구하여 聖明 문물을 펼치니 마치 직접 가서 보고 어루만지듯 하여 풍천지감의 탄식이 배나 더하다. 황명실록 匣을 삼가 받들어 관중 황단의 경봉각에 소장하고 이와 같이 갑면에 삼가 기록한다. 원임내각제학김이교가 삼가 명을 받들어 짓고, 진사 신 홍건후가 명을 받들어 쓴다.
 
 이와 관련하여 1829년동지사를 수행한 역관 趙秀三(1762~1849)이 남긴 「明實錄歌」에 의하면, 같은 관소에 머문 錫汝 李鎭九가 서점에서 명실록을 구입하였는데 태조부터 광종 연간까지 총 461책이었다. 또한 당시 구입한 명실록은 청대 『明史紀事本末』을 편찬한 谷應泰(1620~1690)의 가장본으로 귀국 후 조정에 헌상하여 北壇의 閣에 봉안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1829년 10월 출발한 동지사를 수행한 이진구가 명실록을 북경의 서점에서 구입하여 1830년 봄에 돌아와 조정에 헌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명사』 예문지에 수록된 실록은 희종 연간 84권을 제외하면 2,925권이지만, 1830년 사행에서 구입해온 것은 2,825권이므로 그 총합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특성 및 가치
 1829년 동지사 柳相祚 일행과 동행한 이진구라는 인물이 私財로 에서 『명실록』을 구입하여 조정에 바치고 이를 대보단경봉각에 봉안함으로써 당시까지 에 존주론이 지속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장서각에 『명실록』은 소장되어 있지 않고, 다만 제1책함 덮개의 匣面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 갑면의 기록을 통해 경봉각에 구장되었던 『명실록』 2,825권이 어떤 경로를 통해 조선으로 유입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실증 자료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趙秀三, 「明實錄歌 幷序」, 『秋齋集』 卷5.
서인범, 「『明實錄』의 刊行·收藏과 朝鮮 유입」, 『동국사학』 57,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4.KCI

집필자

정은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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