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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빈김씨묘비문(大韓慶嬪金氏墓碑文)

자료명 대한경빈김씨묘비문(大韓慶嬪金氏墓碑文) 저자 김학진(金鶴鎭)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195 MF번호 MF35-408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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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7(광무 11년)
· 청구기호 K2-5195
· 마이크로필름 MF35-408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김학진(金鶴鎭)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6.5 X 21.7
· 판본 척인본(拓印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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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07년(광무 11)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1832~1907)의 묘비를 탁본한 書帖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大韓慶嬪金氏墓碑文’이고, 황색 제첨지에 묵서하였다. 표지는 斜格卍字紋이 있는 옅은 푸른색 종이를 사용하였고, 折疊하는 형태로 제작한 帖本이다. 본문은 拓印本으로 책수는 26折 13張이고, 종이는 장지를 사용하였다. 행자수는 5行9字이다.
체제 및 내용
 경빈 김씨金在淸의 딸로, 1847년(헌종 13) 10월 순조의 비 순원왕후에 의해 嬪으로 간택되어 ‘경빈’이라는 작호와 ‘順和’라는 궁호를 받았다. 후사 없이 樂善齋에서 주로 거주하였으며, 헌종 사후에는 궁궐을 나와 중부 순화궁에서 거처하였다. 1907년 4월 21일(양력 6월 1일)에 사망하였고, 徽慶園 서쪽에 안장되었다. 당시 비문음기의 제술관은 金鶴鎭(1838~1917)이고 서사관은 徐肯淳이었다.
 본서는 1907년에 작성된 비문을 탁본한 첩으로, 표제는 ‘慶嬪金氏墓碑文’이다. 서첩의 앞부분에 篆書로 쓴 ‘大韓慶嬪金氏之墓’가 있으며 한 면에 한 글자씩 수록되었다. 본문은 1行에 9字로 한 면에 5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경빈의 입궁부터 시작해서 그의 사망까지를 간단히 기술하고, 이어 김학진에게 비문을 찬술하게 한 사실, 그녀의 世系와 純元王后 등 왕실의 어른을 잘 모신 사실, 고종과의 관계 등을 기술하였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후궁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장서각에 『경빈김씨묘지』(K2-3890), 『경빈김씨묘비문』(K2-3889) 등 같은 내용의 비문 다수가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박범, 『경빈김씨묘지 해제』(장서각 http://jsg.aks.ac.kr)
이욱, 「조선후기 후궁 가례의 절차와 변천」, 『장서각』 19,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KCI

집필자

이근호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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