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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보감친상시등록(國朝寶鑑親上時謄錄)

자료명 국조보감친상시등록(國朝寶鑑親上時謄錄) 저자 계제사(稽制司) 편(編)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139 MF번호 MF35-408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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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82(정조 6년)
· 청구기호 K2-5139
· 마이크로필름 MF35-408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계제사(稽制司)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0.8 X 20.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가철장(假綴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4.5×18.6㎝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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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82년(정조 6) 『國朝寶鑑』 편찬 뒤 宗廟, 奉謨堂 등에 봉안하는 과정과 儀註 등을 수록한 등록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親上國朝寶鑑謄錄’이며 직접 묵서하였다. 표지는 민무늬의 미색 저지이고, 紙釘으로 고정시킨 형태이다. 표지 우측 상단에 ‘儀註附’, 하단에 ‘壬寅/禮曹上’이라 기재해놓았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單邊, 上內向二葉花紋魚尾, 有界, 10行의 묵색 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다. 본문의 판심 하단이 훼손되어 있다. 책수는 1冊 21張이고,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다.
체제 및 내용
 조선에서 『국조보감』은 세조 대에 태조, 태종, 세종, 문종의 보감을 편찬한 뒤 한동안 편찬이 중단되었다. 이후 1684년(숙종 10) 『宣廟寶鑑』을 편찬하였으며, 1730년(영조 6) 『肅廟寶鑑』을 편찬하였다. 정조는 즉위 이후 영조의 보감 편찬을 계획하고, 1781년(정조 5) 『英祖實錄』 편찬 직후 보감의 편찬을 지시하는 한편, 보감을 갖추지 못한 역대 국왕의 보감 편찬도 함께 지시하였다. 이후 『國朝寶鑑』으로 명명하여 보감 편찬이 진행되었고, 1782년(정조 6) 11월 刊印을 마무리하였다. 『국조보감』 편찬 뒤 종묘봉모당 등에 봉안하였는데, 본서는 그 과정과 의주 등을 정리한 등록이다.
 본서는 먼저 習儀와 親上, 봉안 등의 일정을 개략적으로 제시한 뒤 본문격인 筵說과 전교 등을 수록하였다. 본문의 앞부분 일부가 누락된 것으로 보이는데, 내용은 『국조보감』 편찬 뒤 종묘에 봉안하는 과정을 결정하는 논의이다. 1782년 10월 25일 昌德宮 誠正閣에서 대신과 비국당상이 입시하여 논의하는 내용의 일부가 누락된 것이다. 계속해서 10월 26일과 28일, 11월 2일 등 시간 순서로 11월 26일까지의 연설과 전교 등을 수록한 뒤, 예조에서 올린 관련 단자를 수록하였다. 이어서 의주를 수록하였는데, 「進國朝寶鑑儀」, 「宗廟永寧殿奉安寶鑑權安儀」, 「奉謨堂展拜儀」, 「奉謨堂權安國朝寶鑑奉出儀」, 「宗廟親上國朝寶鑑儀」, 「永寧殿親上國朝寶鑑儀」 등이다.
특성 및 가치
 정조 연간 『國朝寶鑑』 간행 이후 관리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며, 구체적인 의주를 수록하고 있어 보감을 봉안하는 절차를 파악할 수 있다. 다른 『국조보감』 자료와 함께 검토하면 정조 대 『국조보감』 편찬의 의미 등을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정재훈, 「『國朝寶鑑』을 통해 본 朝鮮前期의 政治思想」, 『國史館論叢』 100, 국사편찬위원회, 2002.
허태용, 「정조의 繼志述事 기념사업과 『國朝寶鑑』 편찬」, 『韓國思想史學』 43, 한국사상사학회, 2013.KCI

집필자

이근호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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