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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책략(朝鮮策畧)

자료명 조선책략(朝鮮策畧) 저자 황준헌(黃遵憲)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137 MF번호 MF35-408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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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80(고종 17년)
· 청구기호 K2-5137
· 마이크로필름 MF35-408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황준헌(黃遵憲)(청(淸)) 저(著)

형태사항

· 크기(cm) 23.8 X 13.2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가철장(假綴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14.0×10.4㎝
· 인장 黃遵憲印, 草創討論之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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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880년(고종 17) 駐日淸國公使館 參事官 黃遵憲(1848~1905)이 조선이 당면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 『조선책략』의 초안 정서본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朝鮮策畧’이며, 사주쌍변의 제첨지에 인쇄하여 표지 좌측 상단에 붙여놓았다. 표지는 미색의 楮紙이고, 紙釘으로 고정시켜 제책한 후 표지를 감싸서 장정하였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單邊, 無魚尾, 有界의 녹색 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고, 책수는 1冊 17張이고, 종이는 楮紙이다. 속지 1면에 서명과 저자 ‘廣東黃遵憲私撰’을 기재하였고, 서명 하단에 인장 ‘黃遵憲印’, ‘草創討論之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표제는 ‘朝鮮策畧’이고, 표제 하단에 ‘廣東黃遵憲私擬’라고 기록하였다. 광동황준헌의 출신지이다. 사의라 하여 개인적 의견임을 명시한 것이지만, 당시 청국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1880년(고종 17) 제2차 修信使의 金弘集 일행이 일본에 체류하면서 주일청국공사 何如璋황준헌 등과 접촉하였고, 황준헌에게서 『조선책략』을 받았다. 김홍집을 중심으로 한 수신사 일행이 8월에 귀국하여 고종에게 『조선책략』을 보고하면서 조선에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황준헌의 『조선책략』은 6천 자에 달한다.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러시아의 침략은 조선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따라서 조선의 당면 과제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것이며, 이를 위해 ‘親中國’, ‘結日本’, ‘聯美國’하며 自强을 도모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친중국’해야 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양국 관계로 설명하고, ‘결일본’해야 하는 이유는 북쪽에 승냥이와 호랑이 같은 러시아가 웅크리고 있으므로 일본과 상보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연미국’해야 하는 이유는 미국이 약소국을 돕고 동양의 평화를 원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점을 입증하기 위해 예상되는 반론을 제시하며 이를 일일이 반박하였다. 마지막 부분에서 러시아의 침략성을 거듭 강조한 뒤 조선으로서 상책은 ‘親中國’, ‘結日本’, ‘聯美國’이고, 하책은 내실 없이 형식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특성 및 가치
 『조선책략』은 조선의 대내외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조선 정부의 對美 수교 방침이 결정되고 개화정책이 추진되는 한편, 일부에서 辛巳斥邪運動이라는 반발이 일어났다. 본서는 특히 초안의 정서본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송병기, 「개항 초기의 조청 관계」, 『신편 한국사 37-서세 동점과 문호 개방』, 국사편찬위원회, 2000.
이헌주, 「제2차 수신사의 활동과 『조선책략』의 도입」, 『한국사학보』 25, 고려사학회, 2006.KCI

집필자

이근호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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