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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부(朝鮮賦)

자료명 조선부(朝鮮賦) 저자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 영인(影印)·교간(校刊), 동월(董越)
자료명(이칭) 朝鮮賦 저자(이칭) 董越(明) 撰 ; , 편자미상(編者未詳)
청구기호 K2-5127 MF번호 MF35-669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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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37
· 청구기호 K2-5127
· 마이크로필름 MF35-669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동월(董越) 찬(撰)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 영인(影印)·교간(校刊)

형태사항

· 크기(cm) 25.8 X 15.2
· 판본 영인본(影印本)·신연활자본(新鉛活字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15.5×10.5㎝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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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499년(성종 19)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 董越의 『朝鮮賦』 중 경상북도 紹修書院에 소장된 1531년(明 嘉靖 10) 간행본을 1937년 조선사편수회에서 『朝鮮史料叢刊』 제15로 影印, 校刊한 자료이다.
서지사항
 총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책의 표지서명은 ‘朝鮮賦’이며, 四周單邊의 제첨지에 영인하였다. “影印參百部 第九○號”라고 하여 총 300부 한정 영인본 중 90호에 해당함을 밝혀놓았다. 표지는 回紋·蓮花紋이 있는 옅은 황색이고, 황색 실을 사용하여 4침안의 선장으로 장정하였다. 1책의 전반부는 ‘朝鮮賦’을 영인하였고, 후반부는 解說을 신연활자로 인쇄하여 첨부하였다. 標題面 1면에 ‘朝鮮史編修會編/朝鮮史料叢刊 第十五/朝鮮賦’라 인쇄되어 있고, 2면에 ‘朝鮮總督府影印慶尙北道紹修書院藏本原一卷一冊原書鑄印匡郭縱二七糎橫一八糎昭和十二年三月刊于京城’이라 인쇄되어 있다. 2책의 표지서명은 ‘朝鮮賦附錄’이고 표지 중앙에 四周單邊으로 표지에 직접 인쇄하였다. 표지는 미색의 민무늬 洋紙이고 洋裝으로 장정한 新鉛活字本이다. 표제면에 ‘朝鮮賦校刊記’라 기록되어 있다. 인장은 1책은 영인한 본문 1면 상단 書眉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고, 2책은 본문 1면 우측 상단에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정사 董越은 부사 王敞과 함께 명나라 효종(1470~1505)의 즉위 조서를 조선에 반포하기 위해 1488년(성종 19) 윤정월 중순에 조선으로 출발하였다. 이후 2월 25일 압록강을 건넜으며 3월 13일 모화관에서 경복궁에 이르러 조서를 반포하였다. 18일에 전별연을 갖고 4월 5일에 다시 압록강을 건너 돌아갔으며, 중국 조정에 이른 것은 5월경이다. 조선에 머문 것은 40여 일이고, 한양에 머문 것은 6일이었다. 동월압록강에서 한양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에 대하여 지명을 나열하고 각 지역의 특징을 풍습과 산물 등 다양한 내용의 賦 형식으로 읊었다.
 『조선부』는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와서 지은 여러 『皇華集』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동월조선 사행 경험을 바탕으로 여정을 먼저 기록하고 후에 회상하는 형식으로 서론, 본문, 결어를 구성하였고, 본문은 내용에 따라 472구의 부를 지었다. 여기에 소수서원 소장본 『조선부』에는 본문과 주석에 과 다른 조선의 풍습을 부각시켜 기술하였고, 조선을 유학을 숭상하는 나라로 묘사하였다. 또한 사신의 입장에서 조선에서 받은 각종 잡희와 연회에 대한 묘사도 상술하였다.
 동월조선의 산천, 풍속, 인정 등을 매일 견문하고 이를 기록하여 상자에 보관하였고, 이 외에도 부사 왕창의 기록과 조선의 접반사 허종에게 받은 조선의 『풍속첩』을 참조하여 저술하였다. 주석은 동월조선 사행을 바탕으로 지은 『朝鮮雜志』와 『使東日錄』 등을 인용하였다. 동월은 사행을 마치고 1년이 지나기 전에 『조선부』의 초고를 썼으며, 그의 제자 歐陽鵬1490년(성종 21) 12월에 서를 쓴 점으로 미루어 귀국 3년 만에 간행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부』가 조선에 유입된 것은 동월이 귀국한 후 4년 만에 방문한 艾璞에 의해서였다.
 조선에서 간행된 『조선부』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수록본, 『황화집』 수록본, 소수서원 소장본이 대표적이고, 중국에서 간행된 것으로는 『사고전서』 수록본이 대표적이다.
 본서의 제1책은 소수서원 소장본을 영인한 것이고, 제2책은 『朝鮮賦附錄』으로 교간본이다. 1531년(明 嘉靖 10) 太斗南 刻本을 간행한 소수서원 소장본을 바탕으로 경성제국대학에 소장된 규장각 소장 고활자본, 藤塚隣태두남 각본을 일본에서 覆刻한 것, 豫章叢書 소장 예장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것을 비교하여 교간하였는데, 정확도는 고활자본, 太斗南 刻本, 藤塚隣 복각본, 예장본 순이었다. 그러나 고활자본의 연대가 정확하지 않아 태두남 각본을 중심으로 교간하였음을 밝혔다.
특성 및 가치
 『조선부』는 명나라 사신이 쓴 『황화집』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며, 부의 형식으로 진솔하게 조선의 산천과 풍속을 기록하여 15세기 후반 명나라 사신의 조선에 대한 인식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영인본 외에 부록으로 『조선부』 판본을 교간함으로써 『조선부』 연구에 매우 의미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신태영, 「명사 동월의 『조선부』에 나타난 조선의식」, 『한문학보』 10, 우리한문학회, 2004.
윤재환, 「董越의 『朝鮮賦』를 통해 본 中國 使臣의 朝鮮 認識」, 『동방한문학』 53, 보고사, 2012.KCI
曺永祿, 「董越의 『朝鮮賦』에 대하여」, 전해종 박사 화갑기념 사학논총 편집위원회 편, 『全海宗博士 華甲紀念 史學論叢』, 일조각, 1979.

집필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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