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천선생우계기초본(竹川先生遇溪記草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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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 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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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시기 | 1960 |
· 청구기호 | K2-5126 |
· 마이크로필름 | MF35-6692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설명 | 생몰년 | 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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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전(朴光前) 저(著) |
형태사항
· 크기(cm) | 25.7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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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 | 영인본(影印本) |
· 장정 | 선장(線裝) |
· 수량 | 1책(冊) |
· 인장 |
藏書閣印
|
· 상세정보
내용
정의
임진왜란 시기 의병장으로 활약한 朴光前이 쓴 遇溪記의 초본을 정리한 문서이다.서지사항
표지서명은 ‘竹川先生遇溪記草本’이다. 표제는 四周單邊인 烏絲欄의 제첨지에 인쇄하였다. 표지는 민무늬의 청색이고, 옅은 주색 실을 사용하여 5침안의 선장으로 장정하였다. 첫 장은 삽도가 있고, 본문은 ‘退溪先生贈朴顯哉詩墨本/李家源謹書’, ‘竹川先生遇溪記草本’을 영인하였다. 맨 뒤에 발문이 첨부되어 있다. 인장은 본문 제3장 우측 상단에 ‘藏書閣印’을 날인하였다.체제 및 내용
朴光前은 1526년(중종 21)에 태어나 1597년(선조 30)에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본관은 珍原, 자는 顯哉, 호는 竹川이다. 할아버지는 선교랑 朴衎이고, 아버지는 진사 朴而誼이며, 어머니는 崔命夔의 딸이다. 퇴계 李滉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1568년(선조 1) 진사에 합격하였다. 유희춘이 감사였을 때 천거되어 관직에 올랐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중에 있으면서도 전라도 보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장남 박근효와 처남 문위세를 각각 전라좌의병의 참모관과 糧餉官으로 출전시킨 뒤 자신은 보성 향리에 남아 군량을 조달하고 후방 지원을 도왔다. 박광전 일가의 의병 활동은 정유재란과 인조 대 병자호란 때까지도 이어졌다. 그는 의병 활동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큰 성과를 남긴 인물이다. 그의 詩와 賦는 16세기 호남문학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성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문서에 기록된 遇溪記이다. 우계기는 1559년(명종 14) 박광전의 나이 34세일 때 보성 대원사 남쪽의 계곡을 유람하면서 그곳에 이름을 붙이고 원림을 조영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문서의 제목처럼 이 글은 우계기의 초본으로 보인다. 본문에는 당대에 박광전과 함께 보성 대원사 부근을 유람한 宜峯 南彦紀가 쓴 발문과 후손이 쓴 발문이 실려 있다. 17세기 후반 인물인 農巖 金昌協은 『竹川集』의 우계기를 읽고 몇 군데 오자를 교정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고 한다. “좋은 문장이다. 좋은 문장이다. 그 문사가 참되고 아름다워 한 시내의 맑은 정취가 먼 훗날 사람들의 눈을 환하게 비추니, 도학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면 외관과 내용이 어찌 이처럼 찬란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우계기의 자세한 내용은 박광전의 문집인 『竹川集』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와 친분이 있던 유희춘이 쓴 『眉巖日記』에서도 박광전의 행적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특성 및 가치
박광전의 문학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참고문헌
김대현, 「竹川 朴光前의 文學 硏究」, 『퇴계학과 유교문화』 32,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03.KCI
집필자
임성수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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