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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왕책봉금책문(義王冊封金冊文)

자료명 의왕책봉금책문(義王冊封金冊文) 저자 서정순(徐正淳)
자료명(이칭) 義王冊封金冊文 , 의왕책봉김책문(義王冊封金冊文) 저자(이칭) 徐正淳 製述 , 편자미상(編者未詳)
청구기호 K2-5114 MF번호 MF35-6690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金石類/冊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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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0(광무 4년)
· 청구기호 K2-5114
· 마이크로필름 MF35-6690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서정순(徐正淳) 제술(製述)

형태사항

· 크기(cm) 27.3 X 15.0
· 판본 척인본(拓印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인장 義王之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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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00년(광무 4) 고종의 다섯째아들인 李堈(1877~1955)을 義王으로 책봉하는 金冊文을 拓本한 첩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義王冊封金冊文’이고 주색의 四周單邊인 백색 비단 제첨에 묵서하였다. 표지는 녹색 비단이고 折疊하는 형태로 제작한 帖本이다. 우측에 ‘光武四年庚子七月二十三日’이라 묵서해놓았다. 拓印本으로 책수는 4折 2張이고 자수는 5行18字이다. 종이는 楮紙이다. 3면에 冊寶印 ‘義王之印’을 날인한 楮紙를 붙여놓았다. 撰者書寫面인 4면에 ‘金冊文製述官從一品崇祿大夫弘文館學士 徐正淳’, ‘書寫官從二品嘉善大夫弘文館副學士 閔景植’, ‘金印篆文書寫官從二品嘉善大夫弘文館副學士 閔景植’이라는 기록이 있다. 앞표지와 이면에 좀먹은 흔적이 보이고, 뒤표지의 녹색 비단은 소실된 상태이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표제와 금책문을 탁본한 첩과 金印, 참여 인원을 필사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에 ‘義王冊封金冊文’이라 적혀 있다. 제후국에서는 왕비나 왕자의 존호 및 책봉 시 玉冊文과 玉印을 사용하는데, 황제국에서는 금책문과 금인을 사용한다. 親王은 본래 황제가 귀비나 후궁들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붙이는 호칭으로, 시대에 따라 황태자를 제외한 황제의 아들이나 황제의 형제들에게 사용되기도 하였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1900년(광무 4) 8월 8일 탁지부 대신趙秉式이 親王 封號望單子에 관해 고종에게 보고하자, 고종이 직접 義親王英親王의 봉호를 정하였다고 전해진다.
 의친왕고종의 다섯째아들이며 어머니는 貴人 張氏이다. 1891년(고종 28) 義和君에 봉해지고, 1894년 報聘大使로 도일하여 일제의 청일전쟁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에 참석하였다. 이듬해 6개국 특파대사로 영국·독일·프랑스·러시아·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을 차례로 방문하고 1896년에 귀국하였다. 1899년(광무 3) 미국에 유학하였는데 유학생 시절에 의친왕에 봉해졌으며, 귀국하여 적십자사 총재가 되었다.
 1919년 일진회에서 활동하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탈출하여 상하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심하였다. 당시 조선 황족 중에서 유일하게 항일 투쟁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해 기차로 도주하여 만주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의친왕이 자택에서 사라지자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전개한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다시 국내로 송환되었다. 그의 망명 실패로 국내 항일 조직인 大同團도 큰 타격을 입었다. 1927년 이후로 일본 정부로부터 여러 번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거부하고 排日정신을 지켰다.
 본문에 금책문을 탁본한 첩과 함께 금인이 찍혀 있다. 금인은 흐려서 테두리 윤곽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마지막에 참여 인원의 명단이 적혀 있는데, 금책문 製述官에 종1품 弘文館 學士 徐正淳, 書寫官과 金印篆文書寫官에 종2품 홍문관 副學士 閔景植이 참여하였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대한제국기의 황실 의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의친왕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까지 생존한 황실의 인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황실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항일 투쟁에 적극 참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朝鮮王朝實錄
연갑수, 『고종대 정치 변동 연구』, 일지사, 2008.

집필자

김동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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