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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협판묘비탑본(嚴協辦墓碑榻本)

자료명 엄협판묘비탑본(嚴協辦墓碑榻本) 저자 정병조(鄭丙朝)
자료명(이칭) 嚴協辦墓碑榻本 저자(이칭) 鄭丙朝 撰 ; , 편자미상(編者未詳)
청구기호 K2-5107 MF번호 MF35-6690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金石類/碑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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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38]
· 청구기호 K2-5107
· 마이크로필름 MF35-6690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정병조(鄭丙朝)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5.5 X 23.3
· 판본 척인본(拓印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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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嚴鳳源(1844~1873)의 비석을 탁본해서 첩으로 꾸민 첩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嚴協辦墓碑榻本’이다. 표제는 백색 비단 제첨에 묵서하였다. 표지는 唐花紋의 옅은 갈색 비단이고 折帖裝으로 장정하였다. 18折 9張이고, 종이는 楮紙이다. 拓印本으로 본문 내용은 嚴協辦墓碑이다. 1938년 7월에 엄봉원의 묘비를 세웠고, 鄭丙朝가 撰하고 李丙熙가 書하였음을 기록하였다.
체제 및 내용
 엄봉원의 본관은 영월, 자는 伯英이다. 嚴鎭三의 큰아들로 고종의 후궁이었던 純獻皇貴妃의 오빠이다. 가정을 꾸렸으나 서른 살의 나이로 후사 없이 일찍 죽어 조카 嚴柱明으로 가계를 이었다. 1897년(광무 1) 여동생이 순헌황귀비로 책봉되자 그 친오빠인 관계로 內部協辦에 特贈되었다. 비문에 따르면 처음에는 高陽郡 神道面 津寬里에 묘역을 마련하였다가 高陽郡 纛島面 毛陳里로 이장하였다. 비석은 1938년에 세웠다. 비문의 문장은 친일 인사인 鄭丙朝가 짓고 글씨는 李丙熙가 썼다.
특성 및 가치
 이 자료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엄봉원에 대한 일부 정보를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아버지인 엄진삼의 비명을 탁본한 『嚴鎭三碑銘』, 嚴俊源의 비석을 탁본한 『嚴校長墓碑榻本』을 통해 이들 가계가 이왕직에 의해 꾸준히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비문들을 통해 고양군 延禧面신도면 일대의 초기 묘역이 1934년을 전후한 시기에 고양군纛島面으로 옮겨져 가족묘역으로 조성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純宗實錄
국사편찬위원회(www.history.go.kr)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현대문화사, 2009.

집필자

김충현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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