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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진삼비명(嚴鎭三碑銘)

자료명 엄진삼비명(嚴鎭三碑銘) 저자 소전치책(篠田治策)
자료명(이칭) 嚴鎭三碑銘 저자(이칭) 篠田治策(日) 撰 ; , 편자미상(編者未詳)
청구기호 K2-5106 MF번호 MF35-6690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金石類/碑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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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34]
· 청구기호 K2-5106
· 마이크로필름 MF35-6690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소전치책(篠田治策)(일(日))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6.0 X 23.8
· 판본 척인본(拓印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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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대한제국기 고종 황제의 후궁인 純獻皇貴妃의 아버지인 嚴鎭三(1812~ 1879)의 묘비를 탁본하여 첩으로 꾸민 것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嚴鎭三碑銘’이다. 표제는 백색 비단 제첨에 묵서하였다. 표지는 唐花紋의 옅은 갈색 비단이고 折帖裝으로 장정하였다. 32折 16張이고, 종이는 楮紙이다. 拓印本으로 본문 내용은 嚴鎭三碑銘이다. 昭和 9년(1934) 10월에 엄진삼의 묘비를 세웠고, 篠田治策가 撰하고 李恒九가 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엄진삼의 본관은 영월, 자는 仲省이다. 英祖 때 명필로 이름 높았던 晩香齋 嚴漢朋이 그의 고조부로 중인 출신이었다. 고종의 총애를 받은 순헌황귀비 엄씨가 딸이므로 영친왕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엄진삼의 가계와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엄한붕 이후 가계가 몰락한 것으로 보인다. 딸이 궁에 들어가 고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가세를 떨치기 시작하였다. 아들 둘이 일찍 죽어 형의 아들인 嚴俊源을 양자로 들였다. 엄준원 이후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에 적극 협조하였다.
 비문의 문장은 李王職 長官이던 篠田治策[시노다 지사쿠]가 짓고 글씨는 李恒九가 썼다. 시노다 지사쿠는 법학박사로 이왕직 장관경성제국대학의 총장을 역임하였다. 이항구는 대표적인 매국노인 李完用의 아들로 스스로 일본 정부로부터 男爵의 작위를 받았다. 이항구는 이후 이왕직의 장관에 이르렀다. 비문에 그의 선대와 생애를 간략하게 서술하였으며, 자손록을 기록하였다. 최초 高陽郡 延禧面 麻根洞에 분묘를 마련하였다가 1934년 高陽郡 纛島面 華陽里로 이장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비문의 양식은 전체적으로 묘표에 가까운 형식이다. 말미에 ‘昭和 九年 甲戌 十月 日 建’이라 하여 1934년에 비석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이 탁본을 통해 순헌황귀비의 가계에 대해 간략하게 알 수 있다. 또한 이왕직 관련 인물들이 관여하여 비석을 세운 것으로 보아 순헌황귀비의 친정이 직간접적으로 이왕직의 관리체계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純宗實錄
국사편찬위원회(www.history.go.kr)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현대문화사, 2009.

집필자

김충현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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