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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섭묘비탑본(嚴英燮墓碑榻本)

자료명 엄영섭묘비탑본(嚴英燮墓碑榻本) 저자 찬자미상(撰者未詳)
자료명(이칭) 嚴英燮墓碑榻本 저자(이칭) [撰書者未詳] , 편자미상(編者未詳)
청구기호 K2-5105 MF번호 MF35-6690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金石類/碑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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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38]
· 청구기호 K2-5105
· 마이크로필름 MF35-6690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찬자미상(撰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35.7 X 23.4
· 판본 척인본(拓印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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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嚴英燮(1922~1937)의 비석을 탁본하여 첩으로 꾸민 것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嚴英燮墓碑榻本’이다. 표제는 백색 비단 제첨에 묵서하였다. 표지는 唐花紋의 옅은 갈색 비단이고 折帖裝으로 장정하였다. 10折 5張이고, 종이는 楮紙이다. 拓印本으로 본문 내용은 嚴英燮墓碑이다. 1938년 7월에 엄영섭의 묘비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엄영섭의 증조부는 嚴鎭三, 할아버지는 嚴鳳源, 아버지는 嚴柱明이다. 고종의 후궁인 純獻皇貴妃의 친정 조카손자가 된다. 할아버지 엄봉원 이후 일본 제국의 식민지 경영에 적극 협조하였다. 아버지 엄주명영친왕과 함께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임관하였다. 비문을 통해 엄영섭이 죽었을 당시 엄주명이 육군 보병 중위였음을 알 수 있다. 엄영섭은 머리가 총명하여 京城中學校 재학 시절 성적이 우수하였다. 그러나 羅疾로 1937년에 17세의 나이로 죽었다. 비석은 죽은 다음해인 1938년에 세워졌다.
특성 및 가치
 엄영섭은 어린 나이에 사망하여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본 탁본첩은 엄영섭에 대해 소략한 정보나마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순헌황귀비의 일족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www.history.go.kr)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현대문화사, 2009.

집필자

김충현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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