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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태비탁본(御沙汰碑拓本)

자료명 어사태비탁본(御沙汰碑拓本) 저자 찬서자미상(撰書者未詳)
자료명(이칭) 御沙汰碑拓本 , 어사태비탁본(御沙汰碑拓本) 저자(이칭) [撰書者未詳] , 편자미상(編者未詳)
청구기호 K2-5101 MF번호 MF35-6690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金石類/碑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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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탁년미상(拓年未詳)
· 청구기호 K2-5101
· 마이크로필름 MF35-6690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찬서자미상(撰書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31.0 X 22.3
· 판본 탁인본(拓印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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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제25대 국왕 哲宗의 駙馬이자 조선 말기의 개화파 지식인이었던 朴泳孝의 묘역에 있던 비석을 탁본한 첩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御沙汰碑拓本’이다. 표제는 四周雙邊의 제첨지에 인쇄하여 표지 좌측에 붙여놓았다. 표제 하단에 小字로 ‘故侯爵朴公墓域謹勅’이라 附記하여 인쇄되어 있다. 표지는 唐花紋의 옅은 갈색 비단이고 백색 실을 사용하여 6침안의 선장으로 장정하였다. 1장과 2장에 ‘御沙汰碑’의 앞면과 뒷면 사진이 삽입되어 있고, 얇은 종이를 덧대어놓았다. 3장부터 탁인한 御沙汰碑의 본문 내용이다. 책수는 1책 5장이고, 종이는 楮紙이다.
체제 및 내용
 박영효는 조선 말의 대표적인 개화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일본 제국으로부터 후작의 작위와 함께 은사금을 받았다. 메이지천황의 장례식에 조선 귀족 대표로 참석하는 등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적극 동조하였다. 1921년 중추원 親任官 대우 고문에 임명되어 5년 동안 재임하였다. 1926년 이완용의 후임으로 칙임관 대우 부의장에 임명되어 죽을 때까지 연임하였다. 철종의 駙馬로 조선 왕가의 일원이면서 일제에 적극 협력하였기에 조선총독부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대우받았다. 본 탁본첩은 이러한 박영효의 사회적 위치를 잘 보여준다.
 본 첩은 부산 다대포박영효 묘역에 있던 비석을 탁본한 것이다. ‘御沙汰’는 조선총독을 의미하는 용어로, 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郎, 1874~ 1955)를 가리킨다. 비석에 박영효의 생애를 찬미하는 내용과 함께 장례 때 보낸 물품에 대한 내용 등을 기록하고 있다.
특성 및 가치
 박영효는 일제에 적극 협력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이에 조선총독부에서 부의물품을 보내고 비석을 세우는 등 그의 친일 업적을 기렸다. 본 탁본첩은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御沙汰碑의 실물은 현재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탁본첩이 남아 있어 그 내용을 알 수 있으며, 조선총독부의 친일 인사에 대한 대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官報
국사편찬위원회(www.history.go.kr)
유병용 외, 『박영효 연구-한국의 인물과 사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4.

집필자

김충현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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