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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약(三國議約)

자료명 삼국의약(三國議約) 저자 편자미상(編者未詳)
자료명(이칭) 三國議約 저자(이칭) [編者未詳]
청구기호 K2-5099 MF번호 MF35-6686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外交·通商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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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82](고종 19년)
· 청구기호 K2-5099
· 마이크로필름 MF35-668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편자미상(編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26.0 X 15.0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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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영국, 독일, 프랑스가 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조선청국이 주고받은 咨文을 엮은 책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三國議約’이다. 표지는 민무늬의 옅은 갈색이고, 짙은 갈색 실을 사용하여 5침안의 선장으로 改裝하였다. 표제는 표지에 직접 묵서하였고, 구표지에는 백색의 제첨지에 묵서하여 붙여놓았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雙邊, 上內向黑魚尾, 無界, 9行24字의 목판본이다. 책수는 1책 29장이고, 종이는 楮紙이다. 뒤표지에 ‘西紀一九七三年三月 藏書閣再裝’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문 첫 기사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조선영국, 조선독일 사이에 議約을 맺어야 하는 필요성을 언급한 내용의 奏文이다. 당시 영국·독일과의 조약은 馬建忠丁汝昌이 중간에 개입하고 있었다. 주문이 언제 나왔는지는 별도의 일자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두 번째는 1882년(고종 19) 4월 22일 北洋大臣이 발송하고 6월 13일 조선국왕이 받은 자문으로, 영국 동아시아함대의 윌리스(George Willis, 韋力士) 제독이 인천항에 도착한 이후 조약 체결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세 번째는 1882년 4월 21일자 자문으로, 조선영국이 조약을 체결하는 데 약정될 14개 조목을 조선국영국 대사가 각각 照會를 하고 다시 조선국 全權大副官이 답변한 조회를 싣고 있다.
 네 번째는 1882년 5월 15일에 북양대신이 조선 국왕에게 보낸 자문이다. 독일공사가 미국과의 조약 수준에 맞는 조약 체결을 희망한다는 사실을 조선에 알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독일공사가 5월 6일 병선을 타고 인천항에 도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섯 번째는 5월 10일에 보낸 자문으로, 조선독일이 맺은 조약의 14개 조목과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국의 조회가 실려 있다.
 여섯 번째는 마지막 자문으로, 조선독일과 조약을 맺는 사실에 대한 조회 내용이 들어 있다. 조선의 전권대사가 인천에서 독일 전권대신과 통상조약을 협의하는 내용에 관한 것, 독일 대사 및 조선 전권대신의 조회가 각각 수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동아시아에 진출하고자 한 유럽 국가들은 조선과의 수교에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영국이었다. 영국동아시아에 주재하던 함대를 이용하여 조선과의 통상조약을 시도하였다. 뒤이어 독일조선과의 통상외교에 참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당시 청국의 속국 지위에 있었으므로 청국조선유럽 국가들과의 조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다. 조선유럽 국가 사이의 조약 체결 과정에서 청국에서 지속적으로 자문을 보낸 것 또한 실제로 청국이 중재하여 외교관계가 성립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참고문헌

최덕수 외 지음, 『조약으로 본 한국근대사』, 열린책들, 2010.
한승훈, 『19세기 후반 조선의 대영정책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집필자

박범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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