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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초평환부출원석명서(黃草坪還付出願釋明書)

자료명 황초평환부출원석명서(黃草坪還付出願釋明書) 저자 편자미상(編者未詳)
자료명(이칭) 黃草坪還付出願釋明書 , 황초평환부출원석명(黃草坪還付出願釋明) 저자(이칭) [編者未詳]
청구기호 K2-5093 MF번호 MF35-6686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度支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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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36
· 청구기호 K2-5093
· 마이크로필름 MF35-668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편자미상(編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28.5 X 20.2
· 판본 신연활자본(新鉛活字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0.8×14.6㎝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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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36년 6월 평안북도 용천군에 소재한 黃草坪을 還付한 내역을 정리한 문서를 편철한 책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과 권수제는 ‘黃草坪還付出願釋明書’이다. 標題面 서명도 동일하다. 표지는 민무늬의 옅은 갈색이고, 백색 실을 사용하여 內綴하여 표지를 덮어 씌운 包背裝으로 장정하였다. 본문은 四周雙邊, 上內向黑魚尾의 주색 李鍝公家事務所 전용 괘지와 李王職 전용 괘지를 사용하였다. 신연활자본이고, 자수는 11行32字이다. 언어는 漢日文 혼용이다. 본문을 흑색과 청색으로 인쇄하였고, 뒷부분은 이왕직 전용 괘지에 내용을 필사하여 보충하였다.
체제 및 내용
 1936년 6월 평안북도 용천군에 소재한 黃草坪을 還付한 내역과 관련된 여러 가지 청원서를 모아서 편철한 책이다. 본문 처음에 ‘黃草坪還付出願釋明書’라고 하여 황초평을 환부하게 된 내역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다. 본 토지의 소유권을 전부 운현궁에서 소유하였다가 후에 국가가 취득하게 된 경위가 요약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의 설명서를 李鍝公李王職 事務官조선총독에게 보냈다. 이하의 본문 내용은 모두 이러한 설명을 증빙하는 문서들이다.
 본문의 대부분은 龍川府尹 兪鎭哲과 보존 증명원이면서 보증인 韓錫範의 聽取書이다. 聽取 과정은 1936년 2월 19일 이왕직 사무관에 의해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진술은 1908년에 일어난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이왕직 사무관이 일본인이었으므로 청취에 이왕직 소속의 통역관이 따랐으며, 筆記者 또한 이왕직 직원이었다. 모두 10건의 청취서가 첨부되어 있다.
 다음으로 경성부에 거주하는 尹泰一을 대상으로 하는 청취서가 들어 있다. 3월 8일에 청취가 진행되었으며, 그는 당시 운현궁을 출입하던 인물이었다. 윤태일의 청취는 이왕직의 조선인 직원에 의해 진행되었으므로 별도의 통역과 필기자는 없었다. 본문의 마지막에 ‘황초평환부출원석명서’의 手記本이 포함되어 있다. 내용은 본문 처음에 나오는 청취서와 동일하며 문구를 수정한 흔적이 확인된다.
특성 및 가치
 일제강점기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토지 문제가 어떻게 취급되었는가에 관하여 중요한 자료적 전거로 활용될 수 있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황초평은 河中島로서 강을 따라 쓸려 내려온 흙이 쌓여 형성된 곳이었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소유권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본 자료는 이왕직에서 조선총독부에 소유권과 관련하여 황초평을 되돌려줄 것을 요청하면서 그 전거로 제시한 것이다. 당시 용천군 출신으로 인천에 살고 있던 한석범용천부윤으로 재직하던 유진철의 진술을 통해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새롭게 형성된 토지의 소유권이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쳤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오병한, 『19세기 말 20세기 초 압록강 하구 黃草坪 분쟁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6.

집필자

박범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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