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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소재경리청매득이속총융청둔답타량성책(靈巖郡所在經理廳買得移屬摠戎廳屯畓打量成冊)

자료명 영암군소재경리청매득이속총융청둔답타량성책(靈巖郡所在經理廳買得移屬摠戎廳屯畓打量成冊) 저자 편자미상(編者未詳)
자료명(이칭) 總戎廳屯畓打量成冊 , 총계청둔답타량성책(總戒廳屯畓打量成冊) 저자(이칭) [編者未詳]
청구기호 K2-5088 MF번호 MF35-6686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度支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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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69(영조 45년)
· 청구기호 K2-5088
· 마이크로필름 MF35-668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편자미상(編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44.0 X 27.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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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69년(영조 45) 經理廳에서 매득하여 관리하던 전라도 靈巖郡 소재 둔전을 摠戎廳에 이속하여 打量한 후 작성한 성책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권수제를 따랐다. 표지는 오염된 백색 楮紙이고, 백색 실을 사용하여 5침안의 선장으로 장정하였다. 본문의 권수에 ‘乾隆三十四年十一月日靈巖郡所在經理廳買得移屬摠戎廳屯畓打量成冊’이라고 필사되어 있다. 본문에 첨지를 사용하여 내용을 附記하여 붙여놓았다. 각 면마다 면과 면 사이에 인장을 3회 날인하였다. 책수는 1冊 10張이고,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다. 뒤표지는 소실되었고, 앞표지와 본문의 훼손 상태가 심하며, 상당 부분 충해를 입어 배접한 후에 다시 제책하였다.
체제 및 내용
 屯田은 군사 목적으로 조성된 토지로서, 변경이나 군사 요지에 설치하여 군량을 충당하는 역할을 하였다. 군인이 농사도 짓고 전쟁도 수행하는 ‘且耕且戰’의 원칙이 본래 둔전을 만든 목적이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전국 각지에 둔전이 조성되면서 일반 농민들과 관노들이 경작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또한 변경이나 군사 요충지에 소재한 군사 시설뿐 아니라 중앙 군영도 둔전을 경영하여 재정 운영에 보태었다. 본서도 1769년(영조 45) 총융청이 경영하던 둔전을 打量한 성책이다. 성책에 기록된 전라도 영암군의 둔전은 원래 經理廳에서 관리하던 것이었다. 경리청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을 축성하면서 군량미를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이었다. 그러나 경종 이후 혁파 논의가 대두되어 역할이 많이 축소되었고, 마침내 1747년(영조 23) 군영체제를 재정비하면서 총융청에 合屬되었다. 그 결과 기존에 경리청에서 관리하던 각종 토지와 재원도 총융청으로 移屬되었는데, 영암군의 둔전도 그중 하나이다. ‘靈巖郡所在經理廳買得移屬摠戎廳屯畓打量成冊’이라는 문서의 제목을 통해 영암군의 둔전이 경리청에서 직접 개간한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매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서는 경리청으로부터 이속받은 屯畓을 새롭게 측량하면서 작성된 문서라고 볼 수 있다.
 본 성책에서는 영암군 내 둔전이 소재한 郡始面, 郡終面, 北一始面, 北一終面, 西始面, 玉泉始面, 玉泉終面으로 영역을 구분하여 둔전의 고유 번호, 전답의 모양, 동서의 길이, 결부 면적, 사방 경계, 두락 면적, 稅米 액수, 기주와 작인의 이름 등의 내용을 기록하였다. 두 곳의 둔전을 동일인이 경작할 경우에는 세액을 묶어서 합계를 표기하였다. 기주와 작인이 동일인인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특성 및 가치
 18세기 총융청 둔전의 소재와 규모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둔전의 면적에 세액을 계산하면 총융청의 재정 수입 규모를 파악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집필자

임성수
범례
  •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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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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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