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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공안(錦營公案)

자료명 금영공안(錦營公案) 저자 이용순(李用淳)
자료명(이칭) 錦營公案 저자(이칭) 李用淳(朝鮮) 編
청구기호 K2-508 MF번호 MF35-729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叢傳/官·軍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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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13(순조 13년)
· 청구기호 K2-508
· 마이크로필름 MF35-729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이용순(李用淳)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4.5 X 22.3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6.0×15.9cm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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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로 보임되었던 인사들의 명단과 재직 기간을 기록한 先生案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書根題는 ‘錦營公案’이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본문은 필사 인찰공책지에 淨書하였는데, 첨지에 ‘墨削’을 기재하여 부착한 부분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1601년(선조 34)부터 이듬해까지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李用純(1550~?)이 처음 편집하였다. 이용순은 첫머리에 있는 발문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충청도 관찰사 선생안을 복구하게 된 내력과 자신의 진외가 조상인 全義李氏 가문의 李愼孝·李德崇·李龜齡 및 자신의 아버지 李憲國과 본인까지 6대에 걸쳐 5명이나 충청관찰사를 지냈음을 기리기 위해 선생안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본문에는 1414년(태종 14)에 보임된 金汝知(1370~1425)부터 1811년(순조 11)에 도임하여 1813년(순조 13)에 이임한 元在明(1763~1816)의 이름까지 적혀 있다. 1565년(명종 20)에 부임한 睦詹까지는 감사의 이름과 도임 연도, 최종 관직을 기재하였고, 그의 뒤를 이은 安方慶 이후 1591년(선조 24)李誠中까지는 行守 여부를 함께 적었다. 1581년(선조 14)관찰사 金宇宏 이후로는 충청 감영都事 명단도 함께 기록하였고, 1591년尹先覺 이후로는 감사의 명칭이 兼巡察使로 바뀌었으며, 도임 및 이임 연월, 도임전 관직, 체직된 이유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619년(광해 11)이성1621년(광해 13)李覮은 성명이 墨削되어 있는데, 인조반정 후 주살되었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말미에는 발문 세 편이 있다. 첫 번째 발문은 1633년(인조 11)에 당시 관찰사 尹毅立(1568~1643)이 지은 것으로 아버지 尹先覺(國馨으로 개명)과 형 尹敬立, 본인 등 3부자가 충청관찰사를 역임하였던 사실을 기록하였다. 두 번째 발문은 1681년(숙종 7)윤경립의 손자인 尹以濟(1628~1701)가 증조부, 종조부, 조부 등 3인의 뒤를 이어 관찰사로 보임된 감회를 적은 것이다. 세 번째 발문은 1679년(숙종 5)관찰사였던 慶㝡가 이임 전에 지은 것으로 고조부 慶渾, 조부 慶暹를 이어 본인까지 5대에 걸쳐 3인이 충청감사를 역임한 것은 이용순이나 윤이제 집안에 못지 않은 경사라는 내용이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충청도 관찰사의 정확한 부임 연월과 부임 전 관직, 체직 이유 등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집필자

강석화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