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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의원]일기([內醫院]日記)

자료명 [내의원]일기([內醫院]日記) 저자 내의원(內醫院) 편(編)
자료명(이칭) 약방일기(藥房日記) , 일기(日記) 저자(이칭) [編者未詳] , 내의원
청구기호 K2-5065-1 MF번호 MF35-6683
유형분류 고서/일기 주제분류 史部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이미지 PDF
키워드 (憲宗朝)己亥日記, (憲宗朝)庚子日記, (隆熙三年)己酉日記, 藥房日記, 內醫院日記, 太醫院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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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39(헌종 5년)
· 청구기호 K2-5065-1
· 마이크로필름 MF35-6683
· 기록시기 1839~1909年(憲宗 5~隆熙 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내의원(內醫院)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7.5 X 28.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3책(冊)
· 판식 반곽(半郭) 30.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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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839년1840년內醫院에서, 그리고 1909년太醫院에서 왕실의 건강 상태나 담당한 업무 내용에 관해 기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총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옅은 회색 표지의 線裝本으로, 표지서명은 표지의 좌측 상단에 기재되어 있는데 각 책마다 다르다. 제1책은 ‘己亥日記’, 제2책은 ‘庚子日記’, 제3책은 ‘己酉日記’이다. 제1, 2책의 표지 우측 상단에 ‘憲宗朝’, 제3책의 표지 우측 상단에 ‘隆熙三年’이라는 글이 기재되어 있다. 제1책은 본문에 앞서 필사 용지 1장을 비워서 표지와 동일한 내용을 기재하였다. 본문의 필사에 四周雙邊, 烏絲欄, 14行, 上下向二葉花紋魚尾의 印札空冊紙를 사용하였다. 본문은 ‘○’ 다음에 날짜를 기재하고, 행을 바꾸어 내용을 기재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본문 가운데 잘못 기재한 부분을 잘라내고 뒤에 종이를 덧붙여 수정하였다. 작성된 시기를 각 책의 표지 정보에 따라 추정하면, 제1책은 1839년(헌종 5), 제2책은 1840년(헌종 6), 제3책은 1909년(융희 3)이다.
체제 및 내용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별다른 기록 없이 본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날짜를 적고 본문을 기술하였는데, 매일 작성한 것은 아니다. 1839년1840년 일기에서 ‘○’ 표시를 한 뒤에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중국 연호와 간지, 월일, 해당 월일의 간지를 적고 그 아래 小字로 날씨를 기재하였다. 예를 들어 1839년 1월 1일은 ‘道光十九年己亥正月初一日戊戌’로 적고, 그 아래에 小字로 ‘晴’이라고 기재하였다. 1909년 일기도 같은 형식으로 작성되었으나, 대한제국의 연호인 ‘隆熙’를 쓰고, 날씨 아래에 入直者와 陽曆 日子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본문 대부분이 王과 大王大妃殿, 王大妃殿, 中宮殿 등의 건강 상태에 대한 문안과 업무 내용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본서의 작성 주체는 내의원으로 추정된다. 또한 관직명을 기술할 때 提調, 副提調로 관청명을 생략하고 기술하였다. 1839년 1월 2일 기사를 보면, ‘提調 臣 趙秉鉉’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같은 날짜의 『承政院日記』를 살펴보면 조병현藥房提調를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藥房’은 내의원의 다른 이름이다. 또한 본문 중에 ‘醫官單子’라는 용어를 쓰거나, 내의원의 人事에 관련한 사항을 수록한 부분도 있다. 1909년 일기에서도 관직명과 왕실에 관한 호칭의 차이는 있으나, 수행한 업무는 같다.
 날짜 이후에 수록된 기사는 口傳問安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일상적인 구전문안 외에도 醫官單子問安, 啓辭問安, 제석문안, 탄일문안 등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 중 『승정원일기』와 중복된 기록도 나타난다. 조선시대에 승정원이 왕명의 출납을 맡으면서 비서실의 기능을 담당했으므로 내의원에서 왕에게 올린 문서와 구전 내용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839년 1월 1일 기사에서 왕이 仁政殿에 행차했을 때 薑茶와 橘薑茶를 올린 사실 등과 같이 내의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록은 본서에만 수록되어 있다. 1909년 일기는 왕실에 진상한 茶나 湯藥, 藥材 등에 대한 정보를 중심으로 기재하였다. 진맥을 살피는 진료는 典醫가 하였으며, 황제의 치과 치료를 위해 일본인 치과 의사 飯塚徹[이즈카 도루]가 따로 진료를 보았다.
 장서각에는 본서 이외에 고종 연간의 내의원일기인 『春秋日記, 藥房』(K2-3617) 18책과 철종헌종 대의 내의원일기인 『藥房日記』(K2-3613) 10책이 소장되어 있다.
 이 밖의 내의원 관련 자료로 조선 후기 의정부에서 약방의 재정 변통을 위해 마련한 식례인 『議政府藥房式例』(奎17199), 종친부에서 종친과 공주·옹주 등에게 약재를 나누어준 내역을 적은 『藥房謄錄』(奎13004), 순조 연간에 내의원에 관한 제반 규정을 정리한 『內醫院式例』(奎17200), 1898년(광무 2) 태의원의 업무를 기재한 『太醫院日記』(古大 4254-45) 등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본서 3책은 본래 한 묶음으로 구성된 책이 아니며 기록된 시기 또한 다르나, 내의원(혹은 태의원)이 주체가 되어 기록한 서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므로 궁중 의료 및 내의원 관제의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본서의 제1책과 제3책의 작성 시기는 70년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 두 시기의 기록 차이를 통해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변화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김정선·황상익, 「1898년도 조선 왕실의 의료 연구」, 『醫史學』 제13권 제2호, 대한의사학회, 2004.KCI

집필자

권석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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