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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궁춘추분제축식(毓祥宮春秋分祭祝式)

자료명 육상궁춘추분제축식(毓祥宮春秋分祭祝式) 저자 편자미상(編者未詳)
자료명(이칭) 육상궁사춘추분제축식(毓祥宮四春秋分祭祝式) , 毓祥宮春秋分祭祝式 저자(이칭) , [編者未詳]
청구기호 K2-5062 MF번호 MF35-6683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殿·宮·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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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26
· 청구기호 K2-5062
· 마이크로필름 MF35-6683
· 기록시기 1926年 以後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편자미상(編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33.4 X 23.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5.7×18.3㎝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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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26년 이후 淑嬪 崔氏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毓祥宮에서 春秋分祭에 쓰인 축식을 수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제는 ‘毓祥宮春秋分祭祝式’이다. 분홍색 표지의 線裝本이다. 표지에 표지서명을 비롯하여 별다른 기록이 없다. 본문의 필사에 四周雙邊, 朱絲欄, 10行, 無魚尾의 그려서 만든 空冊紙를 사용하였다. 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 제2행의 ‘維昭和某年歲次’라는 글을 통해 일본 연호인 昭和 이후에 작성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1926년 이후에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서적으로 장서각 소장 『毓祥宮四仲朔時祭祝式』(K2-5061)이 있다.
체제 및 내용
 별도의 서문이나 목차 없이 축식만 기재되어 있다. 육상궁에 모셔진 사람은 숙빈 최씨(1670~1718)로, 肅宗의 후궁이자 英祖의 생모이다. 본관은 海州이며, 영의정에 추증된 崔孝元의 딸이다. 7세 때 무수리로 궁에 들어왔다고 하며, 1681년(숙종 7) 仁顯王后숙종의 계비로 간택되었을 때 12세의 나이로 인현왕후를 따라 궁에 들어왔다는 설도 있다. 인현왕후를 섬기며 궁궐 생활을 했으나,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가 폐출되고 희빈 장씨가 왕비가 되자 모진 구박을 받았다. 숙종과의 사이에서 아들 永壽를 임신하여 1693년(숙종 19) 淑媛이 되었으나 영수는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고, 甲戌換局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된 후 延礽君 李昑(후의 영조)을 낳았다. 그해 淑儀가 된 데 이어 1695년에는 貴人에 오르고, 1699년(숙종 25) 단종의 복위를 축하하면서 정1품 淑嬪에 봉해졌다. 1701년 인현왕후 사후에는 더 가까이에서 숙종을 섬겼고, 1718년(숙종 44)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능원은 1744년 ‘昭寧墓’라고 올렸다가 1753년 昭寧園으로 승격하였다. 현재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267에 있다. 諡號는 ‘徽德’이며, 존호는 ‘徽德安純綏福’이다.
 육상궁1724년(영조 즉위년) ‘淑嬪廟’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으며, 1744년(영조 20) ‘毓祥廟’라고 고쳐 부르다가 다시 1753년(영조 29) 육상궁으로 승격되었다. 1882년(고종 19)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이 소실된 것을 그 다음해에 복구하였다. 육상궁은 ‘七宮’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1908년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던 제궁들을 이곳에 합설하였기 때문이다. 儲慶宮, 大嬪宮, 延祐宮, 宣禧宮, 景祐宮1908년 육상궁 경내로 옮겨졌고, 1929년德安宮육상궁으로 옮겨와서 칠궁이 되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에 있다.
 축식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의 연호인 昭和 이외에 연월일, 국왕의 諱 등을 모두 ‘某’로 표기하거나 비워두고 있다. 이를 통해 본서의 축식이 실제로 春秋分祭에서 사용되기 전에 用例로 만든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純宗實錄』을 살펴보면, 1908년 7월 23일 기사에 개정한 제사제도에 대한 칙령이 기재되어 있는데, 여기서 육상궁은 1년에 2번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이때의 칙령 이후로 육상궁에 대한 제사를 춘추분제로 지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본서와 동일한 내용이 장서각 소장 『各宮園儀軌』(K2-2403)에 수록되어 있다. 다만 『각궁원의궤』는 연호 부분이 지워져 있다.
특성 및 가치
 본서에서는 기재된 축문의 主祭者를 ‘王 諱 謹遣’으로 호칭하고 있다. 이는 이전에 대한제국 황제로 기재하였던 것과 비교해볼 때 국권 상실 이후 이왕가로 격하된 국왕의 권위를 보여준다. 또 이왕가로 격하된 뒤에도 왕실의 제사를 계속 거행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본서는 국가 제사가 일본강점기를 거치며 격하된 현실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各宮園儀軌』(K2-2403)
純宗實錄

집필자

권석창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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