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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효창묘제문(御製孝昌墓祭文)

자료명 어제효창묘제문(御製孝昌墓祭文) 저자 정조(正祖)
자료명(이칭) 御製孝昌墓祭文 저자(이칭) [編者未詳] , 편자미상(編者未詳)
청구기호 K2-5055 MF번호 MF35-668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殿·宮·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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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86(정조 10년)
· 청구기호 K2-5055
· 마이크로필름 MF35-6682
· 기록시기 1786~1788年(正祖 10~1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정조(正祖) 어제(御製)

형태사항

· 크기(cm) 46.7 X 32.5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철장(鐵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5.1×25.8㎝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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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86~1788년 정조의 첫째아들인 文孝世子(1782~1786)의 죽음에 대해 친히 지은 어제 제문들이다.
서지사항
 본문 첫 장의 서명은 ‘御製文孝世子殯宮親奠祭文’이고, 표지서명은 ‘御製孝昌墓祭文’이다. 표지서명은 사방에 붉은 테두리를 두른 흰색 비단에 글씨를 써서 붙여놓았다. 앞표지 중앙에 표지서명처럼 목록을 적은 흰색 비단도 같이 붙어 있다. 표지 장황은 구름 문양이 있는 녹색 비단을 사용하였고, 장정은 당초 문양이 새겨진 철판을 앞뒤로 붙인 鐵裝으로 해놓았다. 본문의 내용은 御製文孝世子殯宮親奠祭文, 御製孝昌墓親祭祭文, 御製孝昌墓小祥祭攝行祭文이다. 본문의 판식은 12행 사주쌍변의 주사란을 직접 그어 사용하였으며, 글씨는 반듯한 해서로 써놓았다. ‘御製’, ‘慈闈’, ‘殿宮’ 등의 글자는 상단의 계선보다 한 글자씩 더 높이 대두해놓았다. 책수는 본문 4장과 공지 10장이 더 있는 1책이다.
체제 및 내용
 정조는 슬하에 아들이 귀하여 宜嬪 成氏(1753~1786)가 낳은 문효세자유빈 박씨가 낳은 李玜(1800~1834) 둘만이 있다. 문효세자는 일찍 죽고, 이공은 후에 순조가 된다. 정조에게는 일국의 국왕으로서 대를 이어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대내외적인 기대와 열망이 컸다. 따라서 첫째로 낳은 세자의 죽음은 정조에게 국왕과 부모라는 두 입장에서 큰 슬픔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문효세자1782년(정조 6) 태어나 3세에 바로 왕세자에 책봉된다. 그러나 5세라는 어린 나이에 홍역으로 창경궁 慈慶殿에서 훙서하였다. 문효세자의 휘는 ‘㬀, 廟號는 ‘文禧’, 墓號는 ‘孝昌’, 시호는 ‘文孝’이다. 문효세자가 죽은 후 4개월 만에 모친인 의빈 성씨도 죽는다. 그래서 정조는 서로 모자지간임을 고려하여 문효세자의 사당인 文禧廟경모궁 근처가 아닌 의빈 성씨의 사당인 宜嬪廟 근처로 옮겨 짓도록 지시하였다.
 본서의 본문은 ① 御製文孝世子殯宮親奠祭文, ② 御製孝昌墓親祭祭文, ③ 御製孝昌墓小祥祭攝行祭文, ④ 御製孝昌墓補土告由文, ⑤ 御製孝昌墓攝行奠酌禮祭文으로 되어 있다.
 ① 빈궁 친전 제문은 1786년(정조 10) 장례를 치르기 4일 전인 윤7월 15일에 정조가 친히 奠을 올리면서 지은 제문이다. 문효세자의 장례는 사후 98일쯤 된 시기에 치렀다. 제문은 총 926자의 비교적 긴 문장으로, 정조가 평소 정무로 바빠 늘 똑같은 삶을 살다가 아들이 태어남에 인생의 즐거움을 얻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 슬프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전에 즐거움을 주다가 다시 슬픔을 안겨주니 아들의 운명인지, 자신의 운명인지, 조물주의 운명인지 하며 한탄하였다. 전체적으로 樂과 哀를 중심으로 아들을 영결하는 아버지의 슬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② 효창묘 제문은 문효세자가 무럭무럭 자라 三殿에 기쁨을 주었는데, 오늘 저녁에는 술과 안주를 차려 제를 올리게 된 감회를 회상하였다. 또 문효세자영조와 같은 계절에 태어나 앞날을 기약했는데, 5세에 갑자기 죽어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음이 슬프다고 하였다. ③ 小祥 때 攝行한 祭文은 1787년(정조 11) 5월 11일 1주기인 소상 때 친히 작성하여 대신에게 제를 올리게 한 제문이다. 총 96자의 제문이다. 장례를 치른 지 1년이 되어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 그리워진다는 슬픈 심회를 그리고 있다. ④ 孝昌墓 補土告由文은 16자의 짧은 고유문이다. ⑤ 奠酌禮 제문은 1788년(정조 12) 7월 8일에 대신에게 전작례를 대신 지내게 하면서 작성한 어제 제문이다. 총 16자의 짧은 글이다.
 정조문효세자의 죽음에 대해 친제한 글은 이 밖에 『御製孝昌墓行錄墓表碑銘』(K2-5103)과 서울대학교 규장각의 『御製文孝世子孝昌墓神道碑銘』(奎10321)이 더 있다. 이들은 아들이 태어나 기쁨을 안겨준 동시에 너무 일찍 죽음으로 인해 기대가 무너진 정조의 아쉬움과 슬픔을 부모의 입장에서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특성 및 가치
 文治를 숭상한 정조는 자신이 직접 지은 저술을 많이 남겼다. 그중에 妃嬪들과 왕세자의 죽음에 대해 친히 작성한 어제 祭文과 碑文들도 많이 남아 있다. 경전이나 사료의 문장과 달리 사람의 죽음에 대해 짓는 문장들은 禮制와 情感이라는 측면에서 감정의 절제와 노출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제문을 통해 정조의 문장을 세밀히 고찰할 수 있다.

참고문헌

이현진, 「정조대 文孝世子의 喪葬 의례와 그 특징」, 『규장각』 40,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12.KCI

집필자

박경수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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