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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빈치제제문(御製宜嬪致祭祭文)

자료명 어제의빈치제제문(御製宜嬪致祭祭文) 저자 정조(正祖)
자료명(이칭) 御製宜嬪致祭祭文 저자(이칭) [編者未詳] , 편자미상(編者未詳)
청구기호 K2-5054 MF번호 MF35-668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殿·宮·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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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86(정조 10년)
· 청구기호 K2-5054
· 마이크로필름 MF35-668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정조(正祖) 어제(御製)

형태사항

· 크기(cm) 46.2 X 32.5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철장(鐵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5.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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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86년(정조 10) 11월 7일 정조가 후궁 宜嬪 成氏의 장례 때 치제한 어제 제문이다.
서지사항
 본문 첫 장의 서명과 표지서명은 ‘御製宜嬪致祭祭文’이다. 표지서명은 사방에 붉은 테두리를 두른 흰색 비단에 글씨를 써서 붙여놓았다. 앞표지 중앙에 표지서명처럼 목록을 적은 흰색 비단도 같이 붙어 있다. 표지 장황은 구름 문양이 있는 녹색 비단을 사용하였고, 장정은 당초 문양이 새겨진 철판을 앞뒤로 붙인 鐵裝으로 해놓았다. 본문의 판식은 12행 사주쌍변의 주사란을 직접 그어 사용하였으며, 글씨는 반듯한 해서로 써놓았다. 국왕의 ‘國’ 자는 상단의 계선보다 한 글자씩 더 높이 대두해놓았다. 책수는 본문 1장과 공지 10장이 더 있는 1책이다.
체제 및 내용
 1786년 正祖(1752~1800)가 후궁인 宜嬪 成氏(1753~1786)의 죽음에 대해 직접 지은 어제 제문이다. 정조의 비빈은 왕비인 孝懿王后 金氏(1754~1821)를 비롯하여 후궁으로 元嬪 洪氏(1766~1779), 和嬪 尹氏(1765~1824), 의빈 성씨, 綏嬪 朴氏(1770~1822)를 순서대로 두었다. 정조원빈화빈을 맞이한 후 15년 동안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의빈 성씨를 간택한 것이다.
 의빈 성씨洪鳳漢(1713~1778)의 廳直인 성윤우의 딸이다. 어릴 때 궁궐에 들어와 정조의 모친인 혜경궁 홍씨(1735~1815)의 처소에서 궁녀로 일하였다. 정조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은 후 1782년(정조 6) 文孝世子(1782~ 1786)를 낳아 昭容에 봉해졌고, 1783년 2월에 다시 宜嬪으로 진봉되었다. 1784년에 딸을 출산하고, 1786년 9월 14일 셋째 아이를 임신하던 중에 병으로 사망한다. 같은 해 5월 11일 문효세자가 죽었으니 4개월 만인 것이다. 자손이 귀한 왕가에서 세자를 낳아 궁중의 사랑을 받았는데 뜻밖에 세자가 5세의 나이에 죽어 상심으로 날을 보냈다. 옹주도 일찍 죽어 의빈 성씨는 후사가 없다.
 『정조실록』에 11월 20일 의빈 성씨의 장례식을 치렀다고 하는데, 본 제문은 11월 7일에 작성한 것이다. 제문의 길이는 총 386자로 되어 있다. 제문의 내용은 세자의 장례식을 윤7월에 치렀는데 11월에 의빈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어 그 슬픔이 아들 때보다 더하다고 하였다. 정조는 寬譬(비유하여 위로함), 理遣(이치에 순응함)의 단어로 비유를 삼았다. 문효가 남긴 자취를 적고, 그 동생이 되는 복중의 아이마저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으니 그 참혹함이 위로되지 못하고 이치에 순응함도 쉽지 않다고 하였다. 도리를 알고 근검절약하던 의빈의 모습을 그리고, 문효의 죽음에 눈물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배 속의 아이와 같이 문효의 곁으로 가니 이것이 의빈의 소원이었던가 하고 자조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정조가 직접 지은 의빈의 죽음에 대한 글은 『御製宜嬪墓表誌銘』(K2-5102)이 있고, 문효세자의 죽음에 대한 글은 『御製孝昌墓祭文』(K2-5055), 『御製孝昌墓行錄墓表碑銘』(K2-5103)이 있다.
특성 및 가치
 정조의 첫째 후궁인 원빈 홍씨도 간택한 지 1년 만에 사망하였다. 이에 대해 정조는 『御製仁淑元嬪行狀』(K2-664)을 직접 지었다. 그리고 또 세 번째 후궁인 의빈 성씨의 죽음에 대하여 제문과 묘지, 묘표를 직접 작성한 것이다. 이 글들을 통해 부인과 귀한 아들을 잃은 정조의 각별한 심정과 비통한 심회를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집필자

박경수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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