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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맹춘큰전분료도(병인츈큰뎐분뇨도(丙寅孟春大殿分料圖))

자료명 병인맹춘큰전분료도(병인츈큰뎐분뇨도(丙寅孟春大殿分料圖)) 저자 편자미상(編者未詳)
자료명(이칭) 丙寅孟春大殿分料圖 , 병인맹츈큰뎐분뇨도(병인맹춘대전분료도)(병인맹츈큰뎐분뇨도(丙寅孟春大殿分料圖)) 저자(이칭) [編者未詳]
청구기호 K2-5040 MF번호 MF35-668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度支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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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1
· 청구기호 K2-5040
· 마이크로필름 MF35-6682
· 기록시기 1901~1907年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편자미상(編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37.8 X 16.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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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01년부터 1907년 이전 시기에 慶善宮, 英親王宮의 궁녀들에게 봄에 지급한 분급첩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병인츈큰뎐분뇨도’이며 표지에 직접 묵서하였다. 표지는 민무늬의 楮紙를 사용하였고, 折疊하는 형태로 제작한 帖本이다. 본문은 판식 없이 한글로 필사하였고, 行字數는 不定이다. 책수는 39折 19張이고, 종이는 장지를 사용하였다.
체제 및 내용
 궁녀는 왕실의 처소에서 의례 및 의식주와 관련된 노동을 하는 여성들로 정의할 수 있다. 궁녀들은 기본적으로 분업화된 궁방에 소속되어 맡은 일에 따라 위계적으로 서열화되었다. 조선 후기의 궁녀 조직을 각 방의 위계와 그 업무에 따라 구분하면, 至密房은 왕의 신변 보호 및 일체 시중, 내전 물품 관리, 관리들과의 교섭 등 내부 업무를 담당하였다. 針房은 궁중에서 소용되는 의복 제작을 담당하였고, 繡房은 궁중 복식과 장식물의 수를 제작하였다. 燒廚房은 수라를 관장하고 찬품을 담당하는 내소주방, 잔치 음식을 담당하는 외소주방으로 나뉘었다. 生果房은 죽, 다과 등 별식을 담당하였고, 洗手房은 세숫물과 목욕물을 담당하였다. 마지막으로 洗踏房은 빨래, 다림질, 설거지 등을 담당하였다. 궁녀의 신분은 품계와 소속 부처에 따라 구분되었다.
 궁녀는 衣纏, 宣飯, 朔料를 급여로 받았다. 의전은 1년에 두 차례 봄과 가을에 옷감을 내려주는 것이며, 선반은 밥을 주는 것이고, 삭료는 월급이다. 삭료는 매달 정기적인 보수를 일컫는데 갑오경장 이전에는 12공상 제도가 있어 관례 이후부터 내렸으며, 궁녀가 죽었을 때는 베, 무명 등의 물건을 내리고 3년상 안에 고정된 녹을 내려 위로의 뜻을 표하였다. 궁녀들에게 지급한 급여 기록은 여러 발기에 상세하게 남아 있다.
 慶善宮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 엄씨의 궁방이다. 엄씨1897년 10월 영친왕 이은을 낳아 귀인으로 책봉되었다. 황자를 출생하자 엄씨1901년 순비로 책봉되고, 경운궁 내 옛 명례궁 자리에 새로 건립한 경선궁에서 거처하였다. 1904년 12월 순헌귀비가 되었으며, 다시 ‘순헌황귀비’라는 칭호를 받았다. 1911년 순헌황귀비덕수궁 즉조당에서 사망하자, 생전에 거처하던 경선궁을 임시 廟祠로 정하여 德安宮으로 개칭하고 신주를 모셨다. 1913년 태평로에 새로 廟宇를 짓고 순헌황귀비의 신주를 옮겨 덕안궁이라 하였으며, 1929년 7월 다시 육상궁으로 신주를 옮겼다.
 영친왕궁1900년 8월 17일 영친왕으로 책봉된 이은의 거처로, 1907년 영친왕이 황태자로 책봉됨에 따라 폐지되었다. 영친왕궁에 소속된 토지는 경선궁으로 옮겨졌다가 동궁으로 환부되었다. 따라서 경선궁영친왕궁으로 표기가 가능한 시기는 1901년 이후 1907년 이전까지로 볼 수 있어 이 급료첩 표제에 ‘丙寅’이라 밝힌 이유를 확인하기 어렵다.
 경선궁의 지미방 상궁 이하 나인들에게 분급된 급료는 쌀 5석, 콩 5석, 북어 10쾌였다. 지미방 상궁의 호칭은 姓으로 구분하여 표기하였고, 나머지 나인들은 이름을 작은 글씨로 위에 적고, 아래에 성씨를 밝혀 온전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침방 이하로는 상궁의 이름도 위에 부기하여 지미방 상궁과 차별을 두었고, 수방, 내소주방, 외소주방, 생과방, 세수방, 세답방의 순서로 상궁과 나인의 분급 사항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영친왕궁의 경우는 궁방의 구분이 없고, 김상궁과 나인 김희성만 기록되어 궁방이 본격적으로 갖춰지기 이전의 상황으로 파악된다.
특성 및 가치
 대한제국기 경선궁영친왕궁의 궁중 나인들에게 지급한 급료를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사료이다.

참고문헌

구혜인, 「순조~고종대 지밀방 궁녀의 삶과 직무-제조상궁 하씨의 사례를 통하여」, 『한국인물사연구』 22, 한국인물사연구회, 2014.KCI
김소현, 「조선시대 궁녀의 직무와 복식에 관한 연구」, 『복식』 61, 한국복식학회, 2011.KCI

집필자

정은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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