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궁춘추분제축식(景祐宮春秋分祭祝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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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정보 해제 xml
일반사항
· 사부분류 | 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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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시기 | [1929] |
· 청구기호 | K2-5027 |
· 마이크로필름 | MF35-6682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설명 | 생몰년 | 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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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미상(編者未詳) |
형태사항
· 크기(cm) | 33.3 X 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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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 | 필사본(筆寫本) |
· 장정 | 선장(線裝) |
· 수량 | 1책(冊) |
· 판식 | 반곽(半郭) 25.6×18.2㎝ |
· 상세정보
내용
정의
1929년경에 七宮에 있는 순조의 사친인 유비 박씨를 모신 경우궁의 춘추제 때 사용한 축문의 서식이다.서지사항
본문 첫 장의 서명이 ‘景祐宮春秋分祭祝式’이다. 표지 장황은 민무늬의 짙은 분홍색 종이를 사용하였고, 붉은색 실로 선장해놓았다. 본문의 판식은 10행의 사주쌍변 주사란을 직접 그어 사용하였으며, 글씨는 해서로 썼다. 책수는 1책 1장이다.체제 및 내용
본서는 순조의 사친인 綏妃 朴氏(1770~1822)를 모신 景祐宮에서 춘추의 제례를 지낼 때 사용한 축문식이다. 연도가 昭和 연간으로 1929년에 七宮을 조성하면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景祐宮四仲朔祭祝式』(K2-5026)이 사중삭제 때 사용한 축문인 데 비해 본서는 春秋祭 때 사용한 축문식이다. 사중삭제 때의 축문과 내용을 비교하면 연도와 ‘王’이라 적힌 부분만 다르고 본문의 내용이 동일하다. 본 축문의 작성 시기는 축문에 ‘昭和’라고 되어 있다.
1908년(순종 2) 6월 25일 순종은 칙령 제50호 ‘享祀釐正에 관한 件’을 발표하여 제례에 대한 제도를 정비하고 궁내부에서 이를 거행하게 하였다. 즉 儲慶宮·大嬪宮·延祜宮·宣禧宮·景祐宮 5개 궁의 신위를 毓祥宮 한곳으로 옮기고 모두 일년에 두 번의 제향과 기신제만 지내도록 하였다. 1929년에는 德安宮도 옮겨와서 ‘칠궁’이라 하고 합사를 지냈다. 본 축문식은 이때 작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본서는 정빈 이씨의 『延祜宮春秋享祭祝式』(K2-5056)과 표지와 본문의 글씨가 동일하다. 이를 종합해서 본다면 당시 칠궁에 합사를 하고 제례를 지내면서 필요한 각 궁의 제축식을 일제히 다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본 축문 서식의 내용은 『경우궁사중삭제축식』(K2-5026)을 참조하기 바란다.
특성 및 가치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역대 후궁 사당에 대한 제례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사료이다.참고문헌
『景祐宮四仲朔祭祝式』(K2-5026)
『承政院日記』
『延祜宮春秋享祭祝式』(K2-5056)
권용란, 「조선후기 七宮儀禮와 국가 조상신」, 『서울학연구』 제38호,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10.KCI
『장서각도서한국본해제 정서류 2』,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9.
집필자
박경수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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