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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전교급해설(政院傳敎及解說)

자료명 정원전교급해설(政院傳敎及解說) 저자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 편(編)
자료명(이칭) 정원전교(급)해설(政院傳敎(及)解設) , 政院傳敎(及)解設 저자(이칭) 朝鮮史編修會 編 , 朝鮮史編修會編
청구기호 K2-5017 MF번호 MF35-6681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詔令·奏議類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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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34
· 청구기호 K2-5017
· 마이크로필름 MF35-6681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9.3 X 20.0
· 판본 영인본(影印本), 신연활자본(新鉛活字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불분권(不分卷) 3책(冊)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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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임진왜란 당시 승정원에서 류성룡에게 보낸 선조의 傳敎를 모은 책을 1934년조선사편수회에서 影印하고 해설한 책이다.
서지사항
 총 3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검은색 표지의 포갑에 싸여 보관되어 있다. 2책은 傳敎의 影印本이며, 나머지 1책은 解說本으로 신연활자본이다. 표지는 검은색 洋紙이다. 서명은 영인된 구표지에 ‘政院傳敎’라 표기되어 있고, 표제 하단에 冊次가 ‘乾’·‘坤’으로 기재되어 있다. 포갑 裏面에 ‘朝鮮史編修會編朝鮮史料叢刊第五政院傳敎景印禮山柳氏家藏原本原縱四三·二糎橫二八·○糎昭和九年九月刊于京城’을 기록한 첨지가 부착되어 있다. 인장은 1책과 2책의 제1面에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모두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2책은 乾·坤으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 1책은 원본의 내용을 활자화한 것이다. 정원전교의 乾冊은 1592년(선조 25) 7월 17일부터 시작하여 1593년 6월 26일까지 모두 34통의 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坤冊은 1593년(선조 26년) 1월 13일부터 시작하여 1607년(선조 40) 2월 7일까지 43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책 모두 시기 순서상 어긋나 있어서 전교의 배치가 일정하지 않다.
 전교 문서의 본문을 보면 우선 받는 사람이 기재되어 있다. 모든 문서의 받는 사람은 류성룡이지만, 다만 시기별로 류성룡이 어떠한 관직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적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초기에는 대부분 豐原府院君으로 되어 있다. 임진왜란 직전 조선 정부는 명나라에서 편찬한 『大明會典』에 태조의 世系가 李仁任의 후손이라고 잘못 기록된 사실을 발견하였다. 1590년(선조 23)에 奏文을 작성하고 사절을 파견하여 이를 정정하였는데, 이 과정에 공을 세운 19인을 공신으로 책봉하였다. 이 공신을 光國功臣이라고 불렀는데, 이때 류성룡도 3등으로 이름을 올려 ‘풍원부원군’으로 책봉을 받았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초기에는 ‘풍원부원군’으로 지칭되었다. 임진왜란 와중에 류성룡영의정에 임명되고 아울러 4도 都體察使를 맡게 되었다. 이때에는 ‘都體察使豐原府院君’ 혹은 ‘議政府領議政’으로 지칭되었다.
 관직과 이름 다음에 ‘開拆’이라고 기록하였고, 그 하단에 전교 문서를 작성한 관원이 기재되어 있는데 대부분 승정원 승지였다. 담당 승지는 한 사람이 아니라 그때그때 다르게 나타난다. 좌부승지, 우승지, 좌승지, 동부승지 등과 같이 다양하였으며, 관원의 姓과 함께 手決을 하였다. 그 다음 전교의 본문 내용을 기록하고, 문서의 마지막에 연호와 月日을 기록하였다.
 대부분의 내용이 임진왜란 시기와 겹치므로 전쟁의 급박한 상황과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나라의 원군과 조선군의 관계, 이로 인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폐단 문제, 조선군과 명군의 군량을 조달하는 문제, 일본군과 휴전을 협정해야 하는 문제 등과 같은 것이었다.
특성 및 가치
 정원전교의 원본은 현재 안동에 거주하는 류성룡 후손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柳成龍宗孫家文籍’으로 묶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의 역사를 집필하기 위하여 자료를 수집하게 되었고, 류성룡 후손가에서도 정원전교를 영인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1934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자료의 영인과 더불어 문서의 목록을 작성하고 원본의 내용을 활자화하여 『조선사료총간』 제5집으로 간행하였다. 원본의 경우 임진왜란 당시의 승지 수결과 인장의 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고문서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이다.

집필자

박범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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