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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칙유(御製飭諭)

자료명 어제칙유(御製飭諭) 저자 영조(英祖)
자료명(이칭) 御製飭諭 저자(이칭) 英祖(朝鮮王, 1694 - 1776) [撰] , 미상
청구기호 K2-5014 MF번호 MF35-6681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詔令·奏議類/詔令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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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69(영조 45년)
· 청구기호 K2-5014
· 마이크로필름 MF35-6681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영조(英祖) 어제(御製)

형태사항

· 크기(cm) 36.4 X 25.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5.9×20.8㎝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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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69년(영조 45)에 五陵의 정비와 관련하여 영조가 내린 御製 飭諭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御製飭諭’이고 권수제를 따랐다. 표지서명은 제첨지만 남아 있다. 표지는 蓮花唐草紋이 있는 갈색 표지이고, 주색 실을 사용하여 5침안의 線裝으로 장정하였다. 본문 판식은 어미가 없는 사주쌍변의 朱絲欄 종이에 반엽 8行16字로 내용을 필사하였다. 본문의 종이는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책수는 1冊 5張이다.
체제 및 내용
 1769년(영조 45) 오릉의 정비와 관련하여 영조가 내린 어제 칙유 문서이다. 영조는 당시 능침으로 파견된 능관과 예관들에게 勉飭을 내렸다. 어제문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오릉의 巨役이 많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役의 내용을 보면, 능침의 沙臺石과 丁字閣의 月廊을 補柱하는 등의 일이었다. 정자각의 기둥을 다시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오래되어 보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풍수지리상 龍虎의 부근에 흙을 쌓아두고 補莎하는 것 또한 마땅히 추진해야 하는 일이었다.
 능침을 수호하는 것은 수호군이 해야 하는 役이었다. 그러나 이를 감당할 수 없으면, 赴役에 동원해야 하는 경외의 백성과 군병, 吏胥, 差備軍, 僧徒들이 도성을 축성할 때 동원되었던 것처럼 苦事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영조는 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 예관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들을 잘 새겨두고 봉심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특성 및 가치
 본 자료에서 말하는 오릉은 서울의 동쪽에 자리잡은 東五陵을 지칭한다. 여기에는 태조 이성계건원릉을 비롯하여 문종현릉, 선조목릉, 인조휘릉, 현종숭릉 등이 있었다. 1769년 3월 영조는 오릉의 헌관들에게 여러 가지 관리 문제를 지적하였다. 이에 따라 영조는 별도의 전교를 내려 동오릉을 봉심하도록 하였고, 이와 관련된 내용이 서계로 올려졌다. 그러자 오릉의 헌관들과 봉심관들은 오릉의 관리가 허술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흙이 무너지는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되었고, 결국 대대적인 補土가 요청되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자각 보수, 석상 정비 등도 아울러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리하여 영조가 별도의 어제문을 내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세심하게 살펴야 함을 주지시킨 것이다.

집필자

박범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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