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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구풍씨족보(臨朐馮氏族譜)

자료명 임구풍씨족보(臨朐馮氏族譜) 저자 풍영섭(馮榮燮)
자료명(이칭) 임九풍씨족보(臨구馮氏族譜) , 臨구馮氏族譜 저자(이칭) 馮榮燮 編 , 馮榮燮編
청구기호 K2-5008 MF번호 MF35-6679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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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73
· 청구기호 K2-5008
· 마이크로필름 MF35-6679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풍영섭(馮榮燮)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5.4 X 17.5
· 판본 영인본(影印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불분권(不分卷)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19.8×14.1㎝
· 인장 藏書閣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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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인 臨朐馮氏의 족보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 권수제, 판심제는 ‘臨朐馮氏族譜’이다. 표지는 민무늬의 옅은 황색이고, 갈색 실을 사용하여 5침안의 線裝으로 장정하였다. 서명은 四周雙邊의 제첨지에 인쇄하여 표지 좌측 상단에 붙여놓았다. 不分卷 1冊인 影印本이며, 판식은 四周雙邊이고 上內向黑魚尾이다. 종이는 洋紙를 사용하였다. 앞표지 내지에 ‘贈呈’이라 필사되어 있고, 목록의 좌측 상단에 인장 ‘藏書閣印’을 날인하였다. 뒤표지 내지에 1973년 馮榮燮서울에 있는 東文社에서 발행하였다는 판권지를 인쇄하여 붙여놓았다.
체제 및 내용
 임구풍씨중국에서 유래한 성씨이다. 始祖는 명나라의 태학을 지낸 馮三仕이다. 그는 1645년(인조 23) 봉림대군과 함께 심양에 있다가 함께 조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본래 풍씨周 文王의 15번째 아들인 畢高의 후손 畢萬진나라에서 관직에 오르고 위나라에서 받은 식읍인 ‘馮城’이라는 지명에서 ‘馮’이라는 성을 삼았다고 전해진다. ‘임구’는 산동성 청주부임구현에서 유래한 것이다.
 임구풍씨 世譜의 序文은 1835년(헌종 1) 3월 大報壇의 守直官이었던 王德九가 지었다. 임구풍씨 세보 攷訂은 1835년 3월 5세손인 憲祖가 세보를 다시 작성하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임구풍씨 世譜 序는 1864년 8월에 5세손인 學祖가 다시 지은 서문이다. 先墓薦奉後宗約序는 1936년 3월 조상들의 묘를 옮긴 이후에 宗約을 작성하면서 지은 서문 형식의 글이다. 별도의 註를 달아서 묘소의 위치가 어디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대부분 양주군고양군에 있다.
 癸丑譜序는 1973년 1월 10세손 馮榮燮이 족보를 改撰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8개 조목을 정하여 족보를 새로 작성하기 위한 일종의 원칙을 세웠다. 行列字表는 1世인 이후로 사용해야 할 行列字를 나열하고 있다.
 「臨朐馮氏世系源流圖」는 周 文王 이후의 世系를 그린 그림이다. 주나라부터 시작하므로 중간에 이어지지 않는 부분은 ‘中間 未詳’이라고 기록하기도 하였다. 본래 임구풍씨馮三仕를 시조로 삼으므로 그를 1世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풍삼사 이전을 ‘源’이라고 표현하고, 풍삼사 이후를 ‘流’라고 지칭하였다. 세계는 14代까지 이어져 있다. 이 외에도 先塋位置圖를 지도 형식의 그림으로 표시하였는데 양주군 진접에 위치하고 있다. 모두 15기의 묘가 표시되어 있다. 이후 나머지는 족보의 본문이며, 중반 이후에는 일부 선조의 연보를 수록해두었다. 연보는 상단에 한문으로, 하단에 한국어 번역문으로 기록하였다. 족보의 가장 마지막은 족보를 간행한 1970년임구풍씨 문중의 規約과 혼인 현황표, 문중 관계 대표, 각종 規程 등을 수록하였다.
특성 및 가치
 임구풍씨중국에서 유래한 성씨로, 시조가 조선 인조 연간에 조선으로 내화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분명한 문중이 어떠한 방식으로 조선 내에서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족보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족보에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대략적으로 엿볼 수 있다. 특히 1970년대에 이르러 족보를 다시 중수하고 각종 규약을 통해 문중의 결집을 이루고자 노력한 상황도 아울러 파악할 수 있다.

집필자

박범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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