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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실기(野叟實記)

자료명 야수실기(野叟實記) 저자 문원편간회(文苑編刊會) 편(編)
자료명(이칭) 野수實記 , 야수실기(野수實記) 저자(이칭) [編者未詳] , 미상
청구기호 K2-5001 MF번호 MF35-6678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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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75
· 청구기호 K2-5001
· 마이크로필름 MF35-6678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문원편간회(文苑編刊會)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8.0 X 18.7
· 판본 석인본(石印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3권(卷)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20.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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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鄭文炯(1427~1501)의 글과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기록을 抄錄하여 엮은 문집이다.
서지사항
 총 2冊으로 구성되어 있고, 同書 2部로 A2-1·A2-2와 B2-1·B2-2로 구별하였다. 표지서명, 권수제, 판심제는 ‘野叟實記’이다. 표지 장황은 민무늬의 황색 표지이고, 주색 실로 엮은 오침안의 線裝이다. 서명은 四周雙邊의 첨지에 인쇄하여 좌측 상단에 붙여놓았으며, 표제 하단에 ‘乾’, ‘坤’으로 책차를 표기하였다. 앞표지 이면에 증정의 안내문을 적은 첨지를 첨부하였다. 본문의 판식은 石版本으로 四周雙邊이고, 上內向二葉花紋魚尾, 字數는 12行25字이다. 본문의 종이는 洋紙를 사용하였다. 언어는 한문을 사용하였지만 서문은 국한문 혼용이다. 1·2冊 뒤표지 이면에 1975년 文苑編刊會전남 장성에 있는 大東印刷所에서 간행하였다는 판권지를 붙여놓았다.
체제 및 내용
 문집은 乾과 坤의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乾冊 첫머리에 을묘년 8월에 정문형의 후손인 鄭澤洙鄭洙東이 문집의 간행을 주도하여 조상에게 바치는 글이 기재되어 있다.
 목차 앞에 본서의 序文이 수록되어 있다. 정문형의 이력을 나열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으며, 뒷부분에 문집을 간행하게 된 이유가 간략하게 기재되어 있다. 서문은 1975년 7월 문학박사 申奭鎬가 지었다. 목록을 보면 권1에 詞 1편, 疏 3편, 啓 52편, 記 1편, 跋 1편을 수록하였다. 권2에 부록으로 實錄抄를, 권3에 동일하게 부록으로 실록초, 國朝榜目, 淸白吏錄, 墓碣名, 墓道碑銘을 수록하였고, 附로 參判公行狀, 參判公墓表, 鐵原公墓表가 들어 있다.
 본문을 보면 詞는 1편으로 敬次曾祖三峯先生江之水詞이다. 疏는 3편으로 應旨陳所懷疏, 辭右議政疏, 再疏가 있다. 啓는 모두 52편으로, 請使忠淸監司窮治溫陽官奴啓, 陳囚魚得淮事啓, 陳野人防禦啓, 陳還野人搶去頭畜啓, 陳兀良哈來侵啓, 陳退敵啓, 請賑北靑饑民啓, 請江原道進上啓, 以北征事啓, 論平安道防戌啓 등이 있다. 계로 구성된 내용을 살펴보면 상당수의 내용이 북방의 적을 방비하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정문형의 이력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1466년(세조 12) 함길도절도사를 지낸 적이 있으며, 이후 성종 연간에 평안도관찰사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북방 지역의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북방 방어책에 관한 다수의 내용을 중앙 정부에 요청한 사실을 알 수 있다.
 記는 1편으로 평안도 江界 읍내에 위치한 仁風樓의 記文을 수록하였다. 『新增東國輿地勝覽』의 강계도호부 편을 보면 形勝 가운데 인풍루에 대하여 정문형의 仁風樓記를 소개하였다. 동일한 글이 바로 이 기문이다.
 跋은 1편으로 1487년(성종 17)에 쓴 重刊三峰集跋이 있다. 『삼봉집』의 범례를 보면 詩集의 경우 成石璘權近이 관여하였으나 重刻에는 정문형이 增入하여 合錄했다고 하므로 『삼봉집』을 중간할 때 정문형이 적극 관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발문을 쓸 당시 정문형강원도관찰사였다.
 이하의 본문은 부록으로 채워져 있는데 대부분이 실록을 抄錄한 것이다. 1454년(단종 2) 7월 7일자 기사부터 시작하여 1501년(연산군 7) 1월 15일 기사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기사는 정문형의 졸기이다. 초록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문형 관련 기사들을 뽑아서 수록한 것으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과 동일하다.
 나머지는 『국조방목』에서 정문형에 해당하는 榜文 내용, 1969년 6월 邊時淵이 지은 정문형의 묘갈명, 1975년 2월에 변시연이 지은 정문형의 아들 鄭叔墀의 행장인 참판공행장, 1975년 羅鉀柱가 지은 정숙지의 묘표 등이 있다. 본서의 발문은 1975년 3월 변시연이 지었으며, 1975년 9월 변시연이 대표로 있는 전남 장성문원편간회에서 간행하였다.
특성 및 가치
 정문형1427년(세종 9)에 태어나 1501년(연산군 7)에 사망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奉化이고 자는 明叔, 호는 野叟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鄭道傳의 曾孫이다. 1447년(세종 29)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1455년(세조 1) 佐翼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1467년(세조 13)聖節使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성종 대에 들어와서는 경직으로 병조참판형조판서를 지내고 외직으로 황해도, 평안도, 강원도관찰사를 지냈다. 연산군 대에 이르면 판중추부사를 거쳐 우의정에 이르고 나중에는 几杖을 받기도 하였다.
 정도전의 후손들은 태종 연간에 禁錮가 되었으나, 태종 후반에 금고가 풀리면서 정도전의 자손들에게 직첩을 돌려주었다. 이후 세조 연간에 이르러 중앙 진출이 눈에 띄게 이루어지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정문형이었다. 세조 대부터 연산군 대에 이르기까지 중앙의 주요 문신으로 활약하였다. 그의 문집에 다수의 啓文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지방 현황과 북방의 방어책에 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三峰集
新增東國輿地勝覽
朝鮮王朝實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자

박범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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