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시강원진선겸경연관이공시장(侍講院進善兼經筵官李公諡狀)

자료명 시강원진선겸경연관이공시장(侍講院進善兼經筵官李公諡狀) 저자 남정철(南廷哲)
자료명(이칭) 侍講院進善兼經筵官李公諡狀 , 시강원진선겸경연관이공시장(侍講院進善兼經筵官李公諡狀) 저자(이칭) 南延哲 撰 , 南延哲撰
청구기호 K2-5000 MF번호 MF35-6677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10](융희 4년)
· 청구기호 K2-5000
· 마이크로필름 MF35-6677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남정철(南廷哲)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0.5 X 21.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가철장(假綴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9×15.3㎝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조선 후기 학자인 李象秀(1820~1882)의 諡狀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諡狀’이고, 권수제는 ‘侍講院進善兼經筵官書筵官李公諡狀’이다. 표지는 갈색의 洋紙이고, 紙釘으로 고정시킨 假綴裝을 한 후 표지로 감싼 형태이다. 속지 좌측 상단에 ‘謚狀’이라 묵서하였고, 우측 하단에 ‘李公象秀諡狀 一冊’을 기재한 첨지를 붙여놓았다. 본문은 四周單邊, 上內向二葉花紋魚尾, 有界, 묵색 인찰공책지에 10行20字로 필사하였다. 책수는 1冊 9張이고,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다.
체제 및 내용
 이상수의 본관은 전주, 자는 汝人, 호는 峿堂이다. 定宗의 아들인 德泉君 李厚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李演周이다. 韓元震의 학통을 이어 湖論에 속하였지만 洛論인 任憲晦와도 교유하였다. 朴文鎬는 그의 대표적인 제자로, 벼슬에 나아가기보다 은거하며 학문에 힘썼다.
 1880년(고종 17) 이상수에게 재능이 있는 인물을 천거하게 하였다. 또한 경연관 겸 서연관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에도 시강원진선, 사헌부집의 등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고 학문 연마에만 매진하였다. 그가 죽었을 때 수천의 문인이 모여들었다.
 본서는 먼저 이상수의 世界를 밝히고 살아있을 때 행적을 기록하였다. 다음으로 자손록을 작성하고 그의 행적을 평가하는 내용을 실었다. 시장을 지은 사람은 南廷哲(1840~1916)로, 본관은 의령이고 호는 霞山이다. 1882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909년 기로소에 들었다. 중국 천진 주재 참찬관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며, 韓露修好通商條約 비준 사건의 양해를 구하는 고종의 친서를 北洋大臣 李鴻章에게 전달하여 동의를 얻기도 하였다. 또한 協辦交涉通商事務, 督辦交涉通商事務 등 외교와 관련한 업무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순종실록』에 의하면 1910년(순종 3) 7월 이상수에게 정2품 규장각제학으로 추증하였으며 ‘文簡’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음이 확인된다.
특성 및 가치
 諡狀과 行狀은 그 형태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시장은 국왕에게 망자의 諡號를 청한다는 목적이 있다. 본서 역시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서를 통해 이상수의 가계와 그의 생애, 더불어 당대인들의 평가를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純宗實錄
承政院日記

집필자

김충현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