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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록대부농상아문대신엄공세영시장(崇祿大夫農商衙門大臣嚴公世永諡狀)

자료명 숭록대부농상아문대신엄공세영시장(崇祿大夫農商衙門大臣嚴公世永諡狀) 저자 박용대(朴容大)
자료명(이칭) 숭록대부농상아문대신엄공세영시장(崇祿大夫農商衙門大臣嚴公世永諡狀) , 崇祿大夫農商衙門大臣嚴公世永諡狀 저자(이칭) 朴容大 撰
청구기호 K2-4999 MF번호 MF35-6677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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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10](융희 4년)
· 청구기호 K2-4999
· 마이크로필름 MF35-6677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박용대(朴容大)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40.4 X 27.5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가철장(假綴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9.7×22.7㎝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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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嚴世永(1831~1903)의 諡狀이다.
서지사항
 권수제는 ‘崇祿大夫農商衙門大臣嚴公世永謚狀’이다. 표지는 백색의 저지이고, 紙釘으로 고정시킨 假綴裝으로 장정하였다. 표지 우측 하단에 ‘嚴公世永諡狀 一冊’을 기재한 첨지를 붙여놓았다. 본문은 四周單邊, 無魚尾, 有界, 烏絲欄의 종이에 10行20字로 필사하였다. 책수는 1冊 5張이고,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다.
체제 및 내용
 嚴世永의 본관은 寧越, 자는 允翼, 호는 凡齋이다. 1864년(고종 1) 문과에 급제하였다. 1866년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후 전라우도암행어사, 이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881년에는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다. 이때 일본司法省 시찰을 담당하였고, 『日本聞見錄』, 『日本聞見別單草』, 『日本司法省視察記』 등을 저술하였다. 이를 토대로 귀국 후 經理統理機務衙門事律例司堂上이 되었다. 이후 병조참판,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임오군란 때 청군영접관, 성균관대사성을 지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三南廉察使湖南宣撫使로서 동학 교도의 귀향을 주관하였다. 김홍집 내각에서 農商衙門大臣으로 활동했으며, 벼슬이 궁내부특진관에 이르렀다. 고종기로소에 들 때 함께 들었다.
 본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시조 이하 선대를 밝히고, 엄세영의 생전 행적을 기록하였다. 또한 자손록을 첨부하여 후손들에 대해 밝혔다. 마지막으로 엄세영의 생전 행적을 평가하며 시장을 지은 사람을 밝히고 있다.
 본서를 지은 사람은 朴容大(1849~1927)이다. 박용대의 본관은 밀양이며, 이조판서 문정공 朴承輝의 손자이자, 공조참의 朴世秉의 아들이다. 당대 시서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엄세영의 부인인 정경부인 밀양박씨의 族人인 까닭으로 시장을 작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순종실록』에 의하면 1910년(순종 3) 7월 엄세영에게 ‘肅敏’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장의 작성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諡狀은 行狀의 일종이지만 諡號를 받기 위한 목적성을 지닌 글이다. 본서 역시 이러한 시장의 특성에 맞게 작성된 글이다. 엄세영의 가계와 함께 생전 그의 업적을 상세하게 알 수 있으며, 생몰년을 비롯하여 다소 잘못 알려진 내용을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집필자

김충현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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