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석문공행장(石門公行狀)

자료명 석문공행장(石門公行狀) 저자 이경석(李景奭)
자료명(이칭) 石門公行狀 저자(이칭) 李景奭(朝鮮) 撰
청구기호 K2-4996 MF번호 MF35-6677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90(정조 14년)
· 청구기호 K2-4996
· 마이크로필름 MF35-6677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이경석(李景奭)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24.9 X 18.9
· 판본 영인본(影印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불분권(不分卷) 1책(冊)
· 인장 藏書閣印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1790년(정조 14)에 조선시대 문신 李景稷(1577~1640)의 생애를 기록한 行狀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石門公行狀’이고 표지에 직접 金箔으로 인쇄하였다. 표지는 녹색의 두꺼운 겉장이고, 주색 실을 사용하여 5침안의 선장으로 장정하였다. 앞표지의 내지에 ‘有明朝鮮局贈大匡輔國崇祿大夫 … 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李公行狀’이라는 행장명이 기록되어 있고, 상단에 ‘藏書閣印’을 날인하였다. 본문은 판식 없이 필사한 원본을 영인하였으며, 후반부는 현대식 활자로 인쇄한 ‘行狀解說’을 부록하였다.
체제 및 내용
 이경직은 본관이 全州, 자는 尙古, 호는 石門이었다. 증조부는 함풍도정 李繼壽, 조부는 증이조참판 李秀光,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李惟侃, 어머니는 開城高氏大護軍 高漢良의 딸이다. 이항복김장생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01년(선조 34)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06년(선조 39) 증광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광해군 시기 정치적 시련을 겪었지만, 인조반정 이후 신임을 얻어 형조참조·의주부윤 등을 지냈다.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전라도절도사礪山으로 내려가 병사를 모아 난군을 진압하였다. 그 공으로 가선대부에 오르고 수원부사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왕을 강화도에서 호종하고, 접반사가 되어 후금과의 강화를 성사시켰다. 환도 후 호조참판, 경기관찰사,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고, 돌아와 호조판서가 되었다. 1640년(인조 18) 강화유수로 재임 중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仁祖實錄』에는 이경직에 대하여 타고난 국량과 인품이 뛰어났고 집에서는 효도하고 우애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석문공행장에는 위와 같은 그의 행적을 더 상세히 기록하였다. 행장의 찬자는 이경직의 동생이자 領敦寧府事를 지낸 李景奭이다. 白沙 李相國沙溪 金長生에게 수학하던 시기에 총명함을 인정받은 일화들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수행하면서 세운 공적, 호란 중에 왕을 호종한 행적과 공로, 백성을 아끼며 진휼에 앞장선 일화,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시기 인조를 지지한 내용, 검소한 평소 생활, 가족관계 등이 행장에 서술되어 있다.
 본서는 이경석이 쓴 행장을 1970년 이경직의 후손들이 영인한 것이다. 전반부에 행장의 원문이 그대로 실려 있고, 후반부에 행장을 해석한 내용과 주석, 관련된 인물들의 생애 등이 정리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이경직의 생애와 정치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광해군에서 인조 대에 이르는 정국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특히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시 관원들의 대응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

집필자

임성수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