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공조판서유공성환시장(工曹判書兪公晠煥諡狀)

자료명 공조판서유공성환시장(工曹判書兪公晠煥諡狀) 저자 김학진(金鶴鎭)
자료명(이칭) 공조판서유공성환시장(工曺判書兪公晟煥諡狀) , 工曹判書兪公晟煥諡狀 저자(이칭) 金鶴鎭(朝鮮)撰 , 金鶴鎭(朝鮮) 撰
청구기호 K2-4993 MF번호 MF35-6677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86](고종 23년)
· 청구기호 K2-4993
· 마이크로필름 MF35-6677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김학진(金鶴鎭)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1.0 X 21.5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4.0×17.8㎝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金鶴鎭공조판서를 지낸 兪晠煥에게 諡號를 내려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국왕에게 올린 諡狀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과 권수제는 ‘工曺判書兪公晠煥諡狀’이고, 표제는 제첨지에 묵서하였다. 표지는 斜格卍字紋이 있는 황색이고, 주색 실을 사용하여 5침안의 선장으로 장정하였다. 표지 하단에 ‘兪公晠煥謚狀 一冊’이라 필사된 첨지를 붙여놓았다. 본문은 四周單邊, 無魚尾, 有界, 烏絲欄, 10行字數不定의 종이에 필사하였다. 책수는 1冊 3張이고,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다.
체제 및 내용
 諡狀이란 임금에게 諡號를 내리도록 건의하기 위해 해당 인물의 생존 시 행적을 적은 글이다. 『經國大典』에는 종친 및 문무관 實職 정2품 이상과 직위는 낮더라도 親功臣에게 시호를 주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대제학을 지낸 자는 종2품이라도 시호를 받을 수 있었고, 儒賢이나 死節한 자도 특별히 시호가 내려졌다. 이 諡狀의 주인공인 兪晠煥은 본관은 杞溪, 자는 景平이며, 조부는 進士 兪漢維, 아버지는 兪羲柱, 어머니는 徐英輔의 딸이다. 1804년(순조 4) 출생하였으며, 1851년(철종 2) 정시 문과에서 丙科 5위로 급제하였다. 이후 1852년(철종 3) 假注書를 시작으로 典籍, 正言, 校理, 侍讀官, 獻納, 副修撰, 副校理, 司成, 兵曹參議, 右副承旨, 同副承旨, 左副承旨, 參贊官, 右承旨, 副摠管, 戶曹參判, 知義禁府事, 吏曹參判, 同敦寧府事, 大司諫, 知經筵事, 漢城府判尹, 都摠管, 工曹判書 등 다양한 관직을 역임하였다.
 시장의 내용으로 볼 때, 유성환1886년(고종 23) 8월에 사망하였다. 이 글은 사후에 그의 시호를 요청하며 올린 시장이다. 작성 시기는 1886년으로 추정된다. 諡狀의 작성자는 종1품 崇祿大夫 原任奎章閣大提學 金鶴鎭이었다. 시장에는 유성환의 출생과 사망까지 학문적 성과와 성품, 가족들의 품행, 관직 활동과 성과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시장을 올렸지만, 유성환은 곧바로 시호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유성환의 시호는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기 직전인 1910년(순종 4) 7월 순종에 의해 ‘孝貞’으로 내려졌다. ‘효정’은 자혜롭고 어버이를 사랑하며 청백하게 스스로 지켰다는 뜻에서 내려진 시호였다. 당시에 시호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대거 시호가 내려졌는데, 유성환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특성 및 가치
 조선시대에 諡號가 내려지는 절차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유성환에 대한 기록이 1887년(고종 24) 이후로 연대기 사료에서 거의 사라져 그의 생애나 공적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기에 유성환 개인의 연구에도 활용 가치가 있다.

집필자

임성수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