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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릉참봉선생안(明陵參奉先生案)

자료명 명릉참봉선생안(明陵參奉先生案) 저자 편자미상(編者未詳)
자료명(이칭) 明陵參奉先生案 저자(이칭) [編者未詳]
청구기호 K2-4989 MF번호 MF35-6676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叢傳/官·軍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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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21](경종 1년)
· 청구기호 K2-4989
· 마이크로필름 MF35-667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편자미상(編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49.0 X 31.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8.6×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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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제19대 왕인 숙종과 계비인 仁顯王后, 仁元王后가 묻힌 明陵을 관리하던 參奉의 선생안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明陵參奉先生案’이고, 표지에 직접 필사하였다. 앞표지와 속지의 훼손이 심하여 楮紙로 배접한 후 제책하였고, 뒤표지는 소실되었다. 원표지는 짙은 갈색이고, 백색 실을 사용하여 5침안의 선장으로 제책하였다. 본문은 四周單邊, 無魚尾, 有界, 行字數不定, 朱絲欄의 저지에 필사하였다. 書眉에 필요한 내용을 부기하였다.
체제 및 내용
 명릉숙종과 그의 계비 인현왕후, 인원왕후가 묻힌 능이다.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가 죽은 뒤 처음 이곳에 능을 조성하고 ‘明陵’이라 하였다. 1720년(숙종 46) 숙종이 승하한 후 함께 묻혔으며, 1757년(영조 33) 인원왕후가 죽은 뒤 쌍릉의 오른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현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도동에 위치한다. 숙종의 아들인 영조는 재위 중에 수시로 명릉을 찾아가 제를 올렸다. 본 문서는 명릉을 관리하던 參奉의 명단을 적은 선생안이다. 조선시대 최하위 문반직이었던 참봉세조 말에 설치되어 조선 말까지 운영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중앙 정부의 여러 관청에 배속되었지만, 후기에 이르면 정무를 담당한 관서의 참봉은 대부분 혁파되고, 능원묘를 관리하는 참봉이 크게 늘어났다. 참봉은 능을 관리하는 ‘陵參奉’을 부르는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으며, 조선 관료제 하에서 최하위 관직을 의미하는 말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본 선생안은 별도의 서문 없이 참봉의 명단이 바로 나온다. 선생안의 시기는 1701년(숙종 27)부터 1720년(숙종 46)까지이다. 마지막 장은 판단이 불가능하지만, 작성 시기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선생안의 구성은 참봉의 성명, 字, 科擧 기록, 출생 연도, 제수일, 체직일 등으로 이루어졌다. 예컨대 선생안의 첫 인물인 李喜聃은 자가 ‘子壽’이고, 德水 사람이다. 1701년 8월 22일 제수되었으며, 1703년(숙종 27) 8월 14일 체직되었다. 초기에 명릉 참봉에 제수된 인물들은 과거에 합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후대로 갈수록 司馬試나 文科 합격자의 비율이 높아졌다. 선생안의 특성상 기록된 정보의 양이 많지는 않지만, 참봉의 출신과 임기, 체직 후 관직활동 등을 면밀히 분석하면 조선 후기 관료제의 운영 양상을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이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명릉의 운영에 관한 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 자료이다. 선생안과 더불어 ‘明陵謄錄’, ‘明陵日記’, ‘明陵圖’, ‘明陵事例’, ‘明陵補役節目’ 등 명릉과 관련한 자료들을 함께 분석하면 명릉 운영의 전모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집필자

임성수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