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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경각상량문(欽敬閣上樑文)

자료명 흠경각상량문(欽敬閣上樑文) 저자 홍우길(洪祐吉)
자료명(이칭) 欽敬閣上樑文 저자(이칭) 洪祐吉(1809 - 1890)製進
청구기호 K2-4954 MF번호 MF35-4083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古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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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88(고종 25년)
· 청구기호 K2-4954
· 마이크로필름 MF35-408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홍우길(洪祐吉) 제진(製進)

형태사항

· 크기(cm) 108.0 X 78.0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접포장(摺鋪裝)
· 수량 1포(鋪)
· 인장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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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888년(고종 25)흠경각을 중건할 때 홍우길이 작성하고 동부승지 노영경이 담당하여 고종의 재가를 받은 흠경각 상량문이다.
서지사항
 서명과 표지서명은 ‘欽敬閣上樑文’이다. 표지서명은 흰색 종이 제첨을 사용하였다. 표지 장황은 세로로 긴 원문서 한 장을 가로세로 4절씩 摺鋪式으로 접은 후에 표지를 붙여놓은 형태이다. 본문은 한 면에 6행씩 상량문의 구절별로 띄어쓰는 형태로 작성하였다. 마지막에 묵색의 ‘啓’ 자 인장이 찍혀 있다.
체제 및 내용
 1888년(고종 25) 흠경각을 중건할 때 洪祐吉(1809~1890)이 지어 올린 상량문을 가지고 동부승지 盧泳敬(1845~1929)이 담당하여 국왕의 재가를 받은 문서이다. 내용은 흠경각 상량문이지만, 국왕의 재가와 ‘啓’ 자 묵인이 찍힌 것으로 보면 문서의 성격을 가진다고 보겠다.
 흠경각1438년(세종 20)세종장영실을 시켜 경복궁 千秋殿 서쪽에 세운 건물로, 경회루 남쪽에 세운 報漏閣과 함께 천문과 시간을 자동으로 측정하여 알리는 기능을 하였다. 『동문선』에 실린 金墩(1385~1440)의 「欽敬閣記」와 「簡儀臺記」, 「報漏閣記」를 통해 그 내용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흠경각은 여러 차례 소실되고 중건을 거듭하였는데, 1553년(명종 8)에 소실되어 이듬해 중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경복궁의 화재로 다시 소실되었다. 이후 훼손된 부분을 수리했으며, 고종대원군경복궁에 다시 중건하였다. 1876년(고종 13) 경복궁 交泰殿이 불타면서 흠경각도 같이 소실되었고, 1888년慈慶殿, 延生殿, 慶成殿, 含元殿과 함께 다시 중건하였다. 본 상량문은 이때 작성한 것이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흠경각1888년 4월 11일에 터 공사를 시작하였고, 4월 26일에 주춧돌을 놓고 5월 5일에 기둥을 세웠으며, 5월 19일에 상량문 제술관과 서사관을 선정하고 26일에 상량식을 거행하는 일정을 거쳤다. 상량문 제술은 홍우길, 글씨는 金益容이 썼다. 상량문 제술관의 선정을 19일에 하고 22일에 국왕의 재가를 받았으니, 일정만 보면 사흘 정도 걸려서 지어 올린 셈이다. 문서 말미에 ‘同副承旨通政大夫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臣盧(수결)’가 적혀 있으니, 본 문서를 담당하여 국왕의 재가를 맡은 사람은 승지 노영경이다.
 찬자인 홍우길은 본관이 풍산이고, 자는 ‘成汝’, 호는 ‘靄士’, ‘春山’, ‘硏灘’이고, 시호 ‘孝文’이다. 부친은 동지돈녕부사 洪定周이며, 모친은 趙顯誠의 딸이다. 1850년(철종 1)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1856년대사성이 되었다. 이후 한성부판윤대호군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문서에 기록된 관직은 ‘輔國崇祿大夫行知中樞府事’로 되어 있다. 보국숭록대부는 정1품의 자품이다.
 상량문의 내용은 중국軒轅氏堯帝가 천문을 관측하고 시간을 잰 공로를 전제하고, 조선세종이 천문과 시간을 관측하여 백성이 농사를 짓는데 이롭게 했음을 칭송하였다. 이어서 고종이 선대의 업을 계승하여 여러 전각을 보수한 사실을 기록하면서 흠경각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릴 것이라고 예찬하였다. 마지막으로 六偉頌을 읊으며 전각의 무궁한 전승을 기원하였다.
특성 및 가치
 흠경각보루각과 함께 천문과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서, 역대 왕들이 세종의 과학적 업적과 애민정신의 표본으로 삼아 추숭한 곳이다. 고종은 화재로 소실된 전각들을 다시 중건하고 이에 대한 상량문을 짓게 하였다. 본 상량문은 세종의 업적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함축적이면서 논리정연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궁궐에 대한 상량문이라는 문학적인 측면과 국왕의 재가를 받은 결재 문서라는 문서학적 측면에서 의미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東文選
承政院日記
장서각도서한국본해제』- 지리류 2,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5.

집필자

박경수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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