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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릉좌향(諸陵坐向)

자료명 제릉좌향(諸陵坐向) 저자 종부시(宗簿寺) 편(編)
자료명(이칭) 諸陵坐向 저자(이칭) 宗簿寺 編
청구기호 K2-4952 MF번호 MF35-4083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古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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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64]
· 청구기호 K2-4952
· 마이크로필름 MF35-4083
· 기록시기 [1864~1906年(高宗年間)]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종부사(宗簿寺)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1.5 X 14.3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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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의 왕릉과 왕릉 후보지, 태실 위치와 방향 등을 정리한 첩이다.
서지사항
 표지 장황은 문양이 없는 황색 비단에 흰색 비단 표지제첨이 있으며, 그 위에 ‘前面’을 필사하였다. 제첨 하단과 표지에 ‘各陵坐向’을 볼펜으로 필사하였다가 지운 흔적이 있으며, 그 옆에 ‘諸陵坐向’을 볼펜으로 필사하였다. 병풍식으로 절첩한 책이다. 제1면은 ‘諸陵坐向’을 볼펜으로 필사하였다. 제2면부터 제24면까지 필사되어 있으며 각 면마다 7행씩 필사되어 있다. 뒤표지는 국화 문양이 있는 황색 비단에 흰 비단 표지제첨이 있으며, 그 위에 ‘後面’을 필사하였다. 후면에는 제2면부터 제5면까지 7행씩 필사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크게 네 부분, 곧 北闕諸陵坐向, 畿內諸陵坐向, 舊看審處乙卯釐定, 胎峯庫數로 구성되어 있다. 北闕諸陵坐向과 畿內諸陵坐向은 먼저 각 왕릉의 陵主를 밝히고 그 아래에 능호와 왕릉이 위치한 지역명을 써놓았다. 능호의 아래에 세주로 좌향을 쓰고, 지역명 아래에 능이 위치한 곳의 세부 지명을 병기하였다. 北闕諸陵坐向은 太祖의 팔고조에 대한 내용이며, 畿內諸陵坐向은 태조부터 哲宗까지의 왕릉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端宗 莊陵의 경우, 강원도 영월에 위치하지만 따로 구분하지 않고 畿內諸陵坐向에 내용을 수록하였다.
 舊看審處乙卯釐定은 기존 왕릉을 조성할 때 후보지로 올랐던 지역을 목록으로 정리한 것이다. 조선에서 국장이 발생하면 왕릉 후보지를 선정해 간심한 뒤 능역을 조성하였다. 이때 후보지로 오른 곳을 「國陵置簿」에 올려서 훗날 국장에 대비하도록 하였는데, 舊看審處乙卯釐定은 이들 지역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제목에 드러나듯이 이 목록은 乙卯年에 정리된 것이다. 내용 중 ‘交河 長陵靑龍第四岡甲卯龍乙坐辛向今 仁陵’이라는 내용이 있어 인릉이 현재의 위치로 천릉되기 전에 작성된 목록임을 알 수 있다. 인릉1856년(철종 7)에 천릉이 이루어졌으므로 ‘乙卯’는 1855년(철종 6)이며, 인릉을 천릉할 때 만들어진 목록으로 추정된다. 다만 태조莊祖, 正祖, 純祖, 文祖에게 ‘皇帝’의 칭호가 보이고 眞宗憲宗, 哲宗은 ‘대왕’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 1899년(광무 3)부터 1907년(隆熙 1) 사이에 다시 쓰였을 것이다. 胎峯庫數 역시 舊看審處乙卯釐定과 같은 맥락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조선시대 왕실에서 喪事가 발생하면 도성 인근에 길한 땅을 골라 장사 지냈다. 이때 복수 이상의 지역이 왕릉 후보지로 선정되었는데, 조정에서 풍수에 능한 사람을 보내 선정된 지역을 살피게 하고 우수한 후보지는 따로 추려 훗날 국상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본서를 통해 조선에서 「國陵置簿」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알 수 있으며, 왕실에서 왕릉과 왕릉 후보지를 관리했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충현, 「孝宗 寧陵의 조성과 陵制의 변화」, 『역사문화논총』 7, 역사문화연구소, 2012.

집필자

김충현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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