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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효황제유릉지(純宗孝皇帝裕陵誌)

자료명 순종효황제유릉지(純宗孝皇帝裕陵誌) 저자 윤용영(尹用永)
자료명(이칭) 純宗孝皇帝裕陵誌 저자(이칭) 尹用永(1853 - 1939)撰 , 윤용영(1853-1939) 찬(尹用永(1853-1939) 撰)
청구기호 K2-4949 MF번호 MF35-4083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地理類/古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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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26
· 청구기호 K2-4949
· 마이크로필름 MF35-408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윤용영(尹用永)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2.0 X 27.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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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대한제국 제2대 황제 純宗의 陵誌 필사본이다.
서지사항
 표지 장황은 문양이 없는 황색 종이에 ‘誌文’이 필사되어 있다. 병풍식으로 절첩한 책으로, 총 16면의 필사본이다. 上下單邊 烏絲欄이며, 가로줄과 세로줄 모두 계선이 필사되어 있다. 1면에 10行18字이다. 권수제는 ‘純宗孝皇帝裕陵誌’인데, ‘孝皇帝裕陵誌’ 부분은 종이를 덧대어 수정하였다. 본문의 글자를 수정할 때 종이를 덧붙여 그 위에 필사하였다.
체제 및 내용
 純宗대한제국 제2대 황제이다. 이름은 ‘坧’, 자는 ‘群邦’, 호는 ‘正軒’이다. 1874년(고종 11) 고종명성황후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이듬해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882년(고종 19) 閔台鎬의 딸로 훗날 純明孝皇后가 되는 세자빈과 가례를 올렸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됨에 따라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1904년(고종 41) 尹澤榮의 딸을 황태자비로 맞았다.
 고종의 양위로 1907년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고, 연호를 ‘隆熙’로 하였다. 재위 4년 동안 국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이에 순종은 황제에서 왕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창덕궁에 거처하다 1926년 4월 25일에 승하하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裕陵에 안장되었다.
 본서는 유릉순종을 모실 때 埋安한 陵誌의 원고이다. 능지에는 고종명성황후의 아들이자 文祖[효명세자]의 손자로 순종의 가계를 밝히고 있다. 이후 순종의 업적 등을 찬미하는 글로 꾸며졌다. 말미에 능지의 글을 지은 사람과 글씨를 쓴 사람을 밝히고 있다. 능지문은 尹用求(1853~1939)가 지었으며, 글씨는 閔丙奭(1858~1940)이 썼다. 윤용구는 글과 글씨에 능해 당대 많은 금석문의 글씨와 글을 남겼으며, 왕실과 관련한 자료에도 많은 흔적을 남겼다. 민병석 역시 당대 명필로 이름났으며, 『高宗皇帝寶齡六旬御極四十年稱慶紀念碑』와 『東明王陵碑』 등이 그의 글씨이다.
특성 및 가치
 조선에서는 私家와 같이 임금의 능을 조성할 때 誌를 작성하여 매안하였다. 능지에는 피장자의 혈통을 밝히고 살아 있을 때 행적을 찬미하는 글로 서술하였다. 순종은 국권이 피탈된 이후 장사 지내졌는데, 조선시대 전통에 따라 국장이 진행된 마지막 황제였다. 따라서 본서는 마지막 조선 국왕의 능지로서 그 가치가 크다 할 수 있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純宗實錄

집필자

김충현
범례
  •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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