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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원성왕비전하존호옥책문(孝慈元聖王妃殿下尊號玉冊文)

자료명 효자원성왕비전하존호옥책문(孝慈元聖王妃殿下尊號玉冊文) 저자 한장석(韓章錫)
자료명(이칭) 孝慈元聖王妃殿下尊號玉冊文 저자(이칭) 韓章錫(1832 - 1894)製述 , 한장석(1832-1894) 제술(韓章錫(1832-1894) 製述)
청구기호 K2-4943 MF번호 MF35-4083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金石類/冊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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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90](고종 27년)
· 청구기호 K2-4943
· 마이크로필름 MF35-408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한장석(韓章錫) 제술(製述)

형태사항

· 크기(cm) 30.5 X 18.5
· 판본 척인본(拓印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판식 반곽(半郭) 22.2×13.4㎝
· 인장 孝慈元聖正化王妃之寶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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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제2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의 황후인 명성황후에게 올려진 尊號玉冊文의 탁본첩이다.
서지사항
 표지 장황은 문양이 없는 흰색 제첨지에 표제인 ‘孝慈元聖王妃殿下尊號文’을 필사하였다. 녹색 비단으로 서배를 감쌌다. 본문은 음각으로 총 10면이다. 7개의 玉簡이 한 면에 배치되어 7行12字로 되어 있다. 한 행씩 잘라 붙여 첩으로 만들었으며, 붉은색 휘지로 순종의 諱인 ‘坧’ 자를 가렸다. 옥보는 옥책문 다음 장에 朱印으로 날인하였는데, 정방형이며 인문은 ‘孝慈元聖正化王妃之寶’이다. 인주가 첩면에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문 위에 종이를 덮어서 가렸다. 옥보 다음 면에 玉冊文製述官, 書寫官, 玉寶篆文書寫官의 이름과 관직명이 필사되어 있다. 병풍식으로 절첩한 책의 표지와 書背를 하나의 종이로 덮어 싸고 글자가 적히지 않은 뒷면을 풀로 붙여 제본한 선풍장 형태이다.
체제 및 내용
 총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1890년(고종 27) 고종翼宗의 비 대왕대비 神貞王后, 憲宗의 계비 왕대비 孝定王后와 함께 명성황후에게 ‘正化’라는 존호가 올려졌다. 본서는 이때 명성황후에게 올려진 옥책문이다.
 1889년 11월 왕세자(훗날 순종)는 이듬해가 명성황후가 40세 되는 해임을 상기하고,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가 40세 되던 해에 尊號를 올린 예를 본받아 부왕과 모비에게 존호를 올리겠다고 아뢰었다. 이에 1890년 2월에 존호가 올려졌다. 따라서 옥책문의 첫 부분을 보면 ‘維歲次 庚寅 二月 辛未朔十一日 辛巳 世子坧…’이라 하여 왕세자가 올리는 존호임을 밝혔다. 옥책의 문장 제술은 大提學 韓章錫이 맡았고 글씨는 廣州留守 閔泳韶가 썼다. 옥책과 함께 올려진 옥보의 篆文은 總理內務府事 趙秉世가 썼다.
특성 및 가치
 왕실에서 경사가 있을 때 왕실 어른들에게 존호를 올려 기념하였다. 1890년명성왕후가 40세 되는 해이고, 이미 앞서 순원왕후가 40세 되던 해에 존호를 올린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를 본받아 행하였다. 이때 더불어 신정왕후효정왕후에게도 각각 ‘熙祥’과 ‘粹顯’이라는 존호가 올려졌다. 국립고궁박물관에 『高宗妃明成王后加上尊號玉冊』(종묘 134471)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를 탁본하여 첩으로 꾸민 것이 본 『孝慈元聖王妃殿下尊號玉冊文』으로서 함께 짝을 이룬다. 본서는 조선 왕실에서 존호를 올리는 전통을 확인할 수 있음과 동시에 옥책과 옥책문의 보관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高宗實錄
국립고궁박물관(www.gogung.go.kr)

집필자

김충현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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