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종영릉비첩(眞宗永陵碑帖)
자료명 | 진종영릉비첩(眞宗永陵碑帖) | 저자 | 김학진(金鶴鎭), 김성근(金聲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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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이칭) | 眞宗永陵碑帖 | 저자(이칭) | 김학진(조선) 찬; e김성근(조선,1835-1918)서(金鶴鎭(朝鮮) 撰; e金聲根(조선,1835-1918)書) , 金鶴鎭(1838 - 1917)撰; , 이행(李緈)|김학진(金學鎭)|김성근(金聲根)|미상|미상 | ||
청구기호 | K2-4932 | MF번호 | MF35-4083 | ||
유형분류 | 고서/금석문 | 주제분류 |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
수집분류 | 왕실/고서/한국본 | 자료제공처 | 장서각(SJ_JSG) | ||
서지 |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 해제 |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 ||
원문텍스트 | 장서각자료센터 | 이미지 |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
· 원문이미지
· PDF서비스
· 기본정보 해제 xml
일반사항
· 사부분류 | 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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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시기 | [1908](융희 2년) |
· 청구기호 | K2-4932 |
· 마이크로필름 | MF35-4083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설명 | 생몰년 | 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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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진(金鶴鎭) 찬(撰) |
형태사항
· 크기(cm) | 44.5 X 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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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 | 척인본(拓印本) |
· 장정 | 선풍장(旋風裝) |
· 수량 | 1첩(帖) |
· 상세정보
내용
정의
조선 추존국왕 眞宗[孝章世子]의 무덤인 永陵에 세워진 陵碑를 拓本해 꾸민 첩이다.서지사항
표지 장황은 문양이 없는 회백색 종이에 陰記의 찬자와 비석의 前後面 書寫官의 함명을 오른쪽 세로쓰기(右縱書)로 필사하였다. 본문은 음각으로 총 20면이다. 그중 음기는 10면으로 1行2字로 편집되어 있으며, 본문은 10면으로 3行9字씩 잘라 붙여 첩으로 만들었다. 병풍식으로 절첩한 책의 표지와 書背를 하나의 종이로 덮어 싸고 글자가 적히지 않은 뒷면을 풀로 붙여 제본한 선풍장의 형태이다.체제 및 내용
1908년(隆熙 2) 영조의 큰아들인 진종과 孝純王后는 각각 황제와 황후로 추존되었다. 이는 앞서 고종이 大韓帝國을 수립하고 스스로 황제가 된 이후 이루어진 선대 국왕의 황제 추존과 같은 흐름의 조치였다. 이때 진종을 포함하여 헌종과 철종이 함께 황제로 추존되었고, 순종은 그들을 모신 永陵·景陵·睿陵에 陵幸하여 親祭를 한 뒤 각각 表石을 배설하였다. 본 탁본은 진종과 효순왕후를 추존하며 새롭게 세운 永陵表를 탁본한 것이다. 전면에 篆書로 ‘大韓眞宗昭皇帝永陵 孝純昭皇后祔左’라 하였다. 뒷면은 둔중하지만 단아한 해서로 진종의 탄생과 봉군 이력, 왕세자 책봉 사실 등과 더불어 正祖의 承統 사실 등 이력을 기록하였다. 또한 효순왕후 역시 탄생과 세자빈 책봉, 정조 즉위 후 왕후로 추존된 사실 등을 함께 기록하였다.
비문은 金鶴鎭(1838~1917)이 작성하였다. 본관은 안동, 자는 ‘聖天’, 호는 ‘後夢’으로 1871년(고종 8) 문과에 급제한 뒤 요직을 두루 거쳤다. 당대 문장으로 이름을 얻었으므로 비문을 작성하는 撰者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면의 전서와 음기의 글씨는 金聲根(1835~1919)이 썼다. 판서 金蘊淳의 둘째아들로 본관은 안동이다. 1861년(철종 12) 문과에 급제하였고 度支部大臣에 이르렀다. 北宋의 명필인 米芾의 글씨체를 잘 썼다고 전해지며, 『근역서화징』에 글씨가 전한다.
특성 및 가치
본 첩은 조선 왕실에서 왕실 관련 금석 자료를 탁본하여 여러 형태로 보관하던 전통이 대한제국 이후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장서각에 동일한 비석을 탁본해 족자로 꾸민 것이 2종 전하고 있으며, 탁본의 상태로 미루어보아 첩으로 꾸민 본 첩은 보관용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왕실 탁본은 대개 그 제작 시기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비석 제작에 참여하는 인물들이 문장과 글씨로 당대 이름을 얻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우리나라 서예사에 중요한 자료로 기능한다. 『眞宗永陵碑帖』 또한 20세기 전후 시기에 유행한 글씨를 보여주고 있어 서예사적으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藏書閣所藏 拓本資料解題 Ⅰ』, 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4.
URL
황정연, 「조선시대 능비의 건립과 어필비의 등장」, 『문화재』 42,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KCI
집필자
김충현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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