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헌종성황제경릉비문(大韓憲宗成皇帝景陵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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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 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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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시기 | 1908(융희 2년) |
· 청구기호 | K2-4926 |
· 마이크로필름 | MF35-4083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설명 | 생몰년 | 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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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진(金鶴鎭) 찬진(撰進) |
형태사항
· 크기(cm) | 44.4 X 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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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 | 척인본(拓印本) |
· 장정 | 첩장(帖裝) |
· 수량 | 1첩(帖) |
· 상세정보
내용
정의
조선 제24대 국왕 憲宗의 무덤인 景陵에 세워진 陵碑를 拓本해 꾸민 첩이다.서지사항
총 1冊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뒤의 표지가 상실된 상태이고, 장정은 折疊하는 형태로 제작한 帖本이다. 본문은 碑文을 楮紙에 拓印하여 붙였으며, 책수는 24折 12張이다. 撰者書寫面에 ‘陰記撰進官從一品崇祿大夫奎章閣大提學 臣金鶴鎭’, ‘前後面書寫官從一品崇祿大夫奎章閣祗候官 臣尹用求’를 기록하였다.체제 및 내용
1897년 10월에 고종은 大韓帝國의 수립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이후 莊祖[思悼世子]·正祖·純祖·翼宗[孝明世子]을 각각 황제로 추존하였다. 더불어 眞宗[孝章世子]·憲宗·哲宗 역시 추존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1908년(隆熙 2)에 純宗은 진종과 헌종·철종의 황제 추존을 추진하였다. 이에 永陵·景陵·睿陵에 陵幸하여 親祭를 한 뒤 각각 表石을 배설하였다.
본 탁본은 헌종 경릉의 능표를 첩장으로 꾸민 것이다. 전면의 글씨는 篆書로 ‘大韓憲宗成皇帝景陵 孝顯成皇后祔左’라 하였다. 陰記는 단정한 해서로 헌종의 간략한 이력과 더불어 황제 추존 사실을 기록하였으며, 이에 덧붙여 헌종 비 효현왕후 역시 이력과 황비 추존 사실을 기록하였다.
음기의 문장은 金鶴鎭(1838~1917)이 작성하였다. 김학진은 본관은 안동, 자는 ‘聖天’, 호는 ‘後夢’이다. 1871년(고종 8) 문과에 급제한 뒤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다. 당대 문장이 뛰어나기로 이름이 높았으므로 撰者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書者는 尹用求(1853~1939)로 본관은 海平, 자는 ‘周賓’, 호는 ‘石村’이다. 1871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은 판서에 이르렀다. 해서와 행서에 능해 다양한 금석 글씨를 남겼다.
특성 및 가치
조선 왕실에서는 왕실 관련 금석문을 탁본하여 첩으로 제작하고 보관하였다. 『大韓憲宗成皇帝景陵碑文』은 이러한 왕실 전통이 대한제국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다만 채탁한 상태나 장황 등으로 미루어 御覽用이라기보다 보관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서각에 동일한 비석에 대한 탁본이 총 5종이 있는데, 족자 형태가 3종이며 첩장 형태가 2종이다. 족자는 비석의 형태와 더불어 당대 왕실의 장황을 잘 보여준다. 한편 이러한 탁본첩은 조선 후기 서예사에 의미 있는 사료이다. 특히 왕실 관련의 금석자료는 편년을 파악하기 쉽고, 제작에 참여하는 인물이 당대에 문장과 글씨로 이름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大韓憲宗成皇帝景陵碑文』 역시 고종과 순종 때 유행하던 서체를 잘 보여주고 있어 서예사적으로도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藏書閣所藏 拓本資料解題 I』, 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4.
황정연, 「조선시대 능비의 건립과 어필비의 등장」, 『문화재』 42,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KCI
집필자
김충현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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