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실록포쇄시형지안(實錄曝曬時形止案)

자료명 실록포쇄시형지안(實錄曝曬時形止案) 저자 춘추관(조선)(春秋館(朝鮮)) 편(編)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4912 MF번호 MF35-408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實錄存案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23(경종 3년)
· 청구기호 K2-4912
· 마이크로필름 MF35-408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춘추관(春秋館)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46.2 X 30.4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7.0×23.7㎝
· 인장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奉使之印,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1723년(경종 3) 4월 적상산성 실록각에 봉안한 실록을 포쇄하고 작성한 형지안이다.
서지사항
 표지서명은 ‘實錄曝曬時形止案’이고, 본문 첫 장의 서명은 ‘雍正元年(1723)四月日 赤裳山實錄曝曬時形止案’이다. 표지 장황은 민무늬 황색 종이를 사용하였고, 얇은 주황색 실로 선장해놓았다. 앞표지 우측에 ‘赤裳上’, ‘雍正元年’, ‘癸卯四月日’이 적혀 있고, 관인이 찍혀 있다. 본문의 판식은 12행의 烏絲欄, 四周單邊,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인 인찰공책지를 사용하였다. 본문은 실록의 책수별로 한 줄씩 楷書로 적어놓았다. 책수는 본문 38장인 1책이다. 인장은 본문 첫 면에 ‘李王家圖書之章’,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을 날인하였고, 본문의 펼친 면마다 ‘奉使之印’을 3과씩 날인하였다. 본문 마지막에 ‘朝奉大夫行藝文館奉敎兼春秋館記事官 臣申(수결)’이 적혀 있다.
체제 및 내용
 실록형지안은 실록의 奉安과 考出, 포쇄, 실록각 修改 등의 사안에 따라 작성하였다. 卷首에 해당 사안의 전말을 알 수 있는 ‘形止’에 대해 기술한 선원록형지안과 달리 사유를 언급하지 않고 바로 실록의 목록을 기술하였다. 실록각에는 실록 외에 보존할 필요가 있는 서책도 수장하였는데, ‘書冊秩’이라는 항목 아래에 수록하였다.
 실록 목록은 먼저 궤의 순번을 제시하고 해당 궤에 봉안된 실록을 粧冊한 冊次에 따라 수록하였다. 예를 들면 ‘第一樻’의 항목에 ‘太祖大王’을 올려 적고, 다음 줄에 ‘第一之三’을 내려서 기술하였다. 이는 첫 번째 궤에서 『태조실록』의 마지막 책은 ‘第十之五’로 권10에서 권15까지 한 책이다. 마지막 권차 아래에 ‘凡三冊’이라고 기술하여, 『태조실록』 15권을 3책으로 묶었음을 제시하였다. 『선조실록』부터는 전체 실록 궤의 연번을 먼저 기술한 다음, 해당 실록명을 제시하고 다음 줄에 실록 궤의 순번을 다시 ‘第一樻’로 매기었다.
 1723년 적상산 실록각에는 1685년(숙종 11) 9월에 『현종개수실록』을 봉안한 후와 동일하게 모두 36개의 실록 궤가 있었다. 형지안 내에서 記述의 변화를 들자면, 『정종실록』에 본래 ‘恭靖王實錄’이던 標題를 1707년(숙종 33) 2월에 史官의 上疏로 인해 ‘定宗大王實錄’으로 고치게 되었다. 본 형지안에서는 1707년 10월에 포쇄하면서 ‘定宗大王實錄’으로 표제를 교체하였다고 각주에 기술하였다. 그러나 1707년 3월에 포쇄하면서 작성한 형지안(K2-3748)에는 당시에 표제를 교체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또한 1707년 10월에 포쇄하면서 작성한 형지안(K2-3749)에는 당시에 교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1705년(숙종 31) 3월에 『端宗大王實錄附錄』을 봉안할 때부터 실록 목록에서 ‘魯山君日記’로 기술하였던 것을 ‘端宗大王’으로 표기하였다. 『단종실록』 5책의 다음 줄에 ‘附錄一 凡六冊’이라고 적어 부록을 포함하여 총 책수가 6책임을 밝혀놓았다. 『단종대왕실록부록』은 『단종실록』과 함께 제4궤에 봉안하였다. 보통 정족산 실록각에 가장 먼저 실록을 봉안하는 것이 상례인데, 『단종대왕실록부록』은 적상산 실록각에 가장 먼저 봉안하였다.
 서책은 모두 18개의 궤에 보관되었다. 첫 번째 궤의 서책 목록은 ‘仁祖朝實錄儀軌 一冊’부터 수록하였고, 의궤 아래에 ‘順治十年’을 적어 1653년의 의궤임을 밝혔다. 실록각에 수장한 의궤는 1688년의 ‘山陵都監儀軌 一冊’까지 제3궤와 여타의 궤에 섞여 보관되었다. 제4궤부터는 일반 서책을 보관하였는데, 『용비어천가』 5책을 가장 먼저 수록하였다. 『용비어천가』를 넣은 제4궤가 좁아서 이번 1723년 4월 포쇄할 때 제11궤로 옮겼다는 것을 주기하였다.
 형지안은 1606년(선조 39)의 『실록포쇄형지안』부터 이번 1723년의 형지안까지 모두 제12궤에 보관하였다. 서책들 중에서 『程書分類』 등은 실록각 상층에 보관하다가 하층으로 내려온 책이다. 『열성지장통기』와 『열성어제』는 1721년(경종 1) 8월 상층에 봉안하였다. 손상이 있는 서책에는 목록에 ‘腐破’나 ‘傷汚’를 부기하였다. 1723년에 포쇄를 담당한 봉명관은 예문관 봉교 申致雲이다.
특성 및 가치
 본 형지안은 경종 재위 기간에 작성된 것으로, 적상산 실록각의 실록 봉안과 서책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赤裳山實錄曝曬時形止案』(K2-3748)
赤裳山實錄曝曬時形止案』(K2-3749)
강문식, 「조선후기 강화사고의 운영」, 『조선시대사학보』 64, 조선시대사학회, 2013.KCI
강문식, 「조선후기 오대산사고의 운영」, 『장서각』 27, 한국학중앙연구원, 2012.KCI
조계영, 「조선시대 실록부록의 편찬과 보존」, 『한국문화』 62,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13.KCI

집필자

조계영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