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각궁사무정리소사무성적조사서(各宮事務整理所事務成蹟調査書)

자료명 각궁사무정리소사무성적조사서(各宮事務整理所事務成蹟調査書) 저자 궁내부(宮內府) 편(編)
자료명(이칭) 各宮事務整理所事務成蹟調査書 저자(이칭) 궁내부(조선) 편(宮內府(朝鮮) 編) , 宮內府編
청구기호 K2-4880 MF번호 MF16-1425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其他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8(융희 2년)
· 청구기호 K2-4880
· 마이크로필름 MF16-1425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궁내부(宮內府)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6.8 X 18.5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2×13.7㎝
· 인장 奎章閣記錄課之章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1906년(광무 10)부터 1907년(융희 1)까지 궁내부 각 궁 사무 정리소의 업무와 내수사·9궁 등의 인원과 재산 정리 상황을 기록한 자료다.
서지사항
 表題는 ‘各宮事務整理所事務成蹟調査書’이다. 不分卷 1冊(84張) 구성의 5침 線裝本으로 표지는 문양이 없는 黃色 종이이며, 본문의 종이는 洋紙를 사용하였다. 판식은 四周雙邊, 有界, 無魚尾, 판심 하단에 ‘宮內府’라고 인쇄된 형태의 朱色 印札空冊紙이나 일정하지 않다. 본문도 10行字數不定으로 된 筆寫本으로 한문과 일문이 혼용되어 있으며, 판식의 변화에 따라 일정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권말에 정방형의 ‘奎章閣記錄課之章’이 날인되어 있고, 표지 이면에 ‘西紀一九七三年十二月藏書閣再裝’이라는 스탬프를 날인하여 본서가 1973년에 改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대한제국 융희 연간에 內需司壽進宮·龍洞宮·明禮宮·於義宮 등 1司 9宮의 인원과 토지 및 재정 등을 정리하기 위해 설치된 宮內府整理所의 관련 업무를 기록한 자료이다. 정리소의 설치 과정을 비롯하여 인원 해산, 사무 및 회계 정리 등을 사안별로 정리해놓았다. 첫 문서는 궁내부 주사 平野貞次郞의 이름으로 작성된 附言인데, 1907년(융희 1) 궁내부 관제 개정 이전에 각 관청의 직무 권한과 사무 성적 등을 조사한다고 하였다. 본 자료 말미에 裁可案·布達·宮內府令 등의 공문과 이와 관련된 각종 조사표 및 수입·지출표가 첨부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내수사와 각 궁은 왕실 재정과 典禮 행사 등의 비용을 담당하였는데, 이를 위해 백성을 마음대로 수탈하였고,宮屬의 기강이 해이해져 재원이 고갈되고 부채가 상당하다고 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궁내부 안에 정리소를 설치해서 인원 조정과 재산 수합 등을 계획하여 행한다고 하였다. 정리소 안에 供進所를 설치하여 각 궁 인원 345명을 해산하였는데, 반발이 심해 비밀리에 일을 진행시켰으며, 해산 인원에게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하였다. 庫直 이하 인원 17명에게 각각 20원씩, 婢子 40명에게 각각 10원씩 주도록 하였는데, 재정 상태가 나빠서 가을 추수를 기다려 시행한다고 하였다. 정리소에서 내수사명례궁·용동궁·어의궁·수진궁 등 1사 4궁의 금전과 곡물도 인수하였는데, 명례궁이 제일 많았다. 각 궁에서 은닉하거나 미리 사사로이 처분한 것도 있다고 적혀 있다. 공진소는 경우궁·선희궁·육상궁 등 3궁의 인원 132명도 해산하였다.
 또한 전례 행사에 필요한 음식과 물품을 조달할 때 종래에는 상인들과 결탁한 부정행위가 있었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미리 예산서를 제출하여 심사를 받고 물품 검사를 거쳐 상납하게 한다고 하였다. 내수사와 각 궁의 회계가 매우 문란하므로 內下錢을 공진소로 내려주고, 북경공사관을 판 돈 3만 원을 정리소에서 쓸 수 있게 하였다. 수입과 지출 금액을 엄격히 관리하고, 고문관을 통해 大臣에게 보고하여 모두 증빙을 받도록 하였다. 아울러 내수사와 각 궁이 소유한 토지를 파악하기 위해 경성 부근부터 측량 기사를 배치하여 조사한다고 하였다. 각 토지에서 세금을 거두는 방법도 개량한다고 하였다.
특성 및 가치
 1904년(광무 8)에 제1차 한일협약이 체결되자 일본은 일본인 고문들을 대한제국에 파견하여 궁내부와 정부의 각 부서를 장악해나갔다. 그 가운데 궁내부 고문으로 임명된 가토 마스오(加藤增雄)내수사 및 각 궁의 재산과 사무를 정리하면서 점차 실권을 행사하였다. 본 문서는 이러한 과정 중에 1907년 전후 시기 내수사와 각 궁의 상황 및 변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王室圖書解題-大韓帝國期』, 韓國學中央硏究院, 1979.

집필자

김세은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